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이 이루어진 한국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2025년 3월 7일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4회차씩 4주 동안 공개되며 총 16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쌈, 마이웨이>와 <동백꽃 필 무렵> 등을 통하여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임상춘 작가가 집필을 맡았다고 해서 기대감이 컸는데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뜨거운 호응을 불러 일으키며 관심을 잡아끄는데 성공했다고 해서 놀라움이 극대화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1960년 제주도를 배경으로 비롯돼 2025년에 이르기까지 65년 간의 시간을 다룬 이야기는 오애순과 양관식의 사랑 이야기를 사계절을 중심으로 담아내며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광례, 오애순, 양금명으로 이어지는 여성 삼대의 시간을 접하게 해준 점이 감탄을 자아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와 함께 어린 애순은 김태연, 젊은 애순은 아이유, 중년의 애순은 문소리가 연기한 점도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로 인하여 애순과 엄마 광례, 애순과 딸 금명이 함께 하는 나날을 바라볼 수 있어 뜻깊었답니다.
※ 줄거리 및 결말과 관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애순은 당차고 요망진 여자아이였고, 관식은 애순 밖에 모르는 순정남 그 자체였는데 아이유와 박보검의 케미가 기대 이상이라 보는 즐거움이 쏠쏠했습니다. 스토리 구성상 박보검의 비중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식의 캐릭터가 선사하는 여운이 예상을 뛰어넘어 탁월한 캐스팅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년의 관식 역을 맡은 박해준의 열연 또한 말해 뭐할까 싶고 말이지요. 여기에 더해 아이유는 젊은 애순을 포함하여 10대부터 50대까지 나이를 먹어가는 금명을 선보여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에 녹아든 나레이션 역시도 아이유의 몫이어서 아이유를 위한 드라마였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서로의 첫사랑과 다름 없었던 애순과 관식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는데 성공했지만 마냥 평탄한 일상을 살아가진 못했어요. 슬하에 딸 금명과 아들 은명, 동명을 두었으나 막내 동명은 사고로 세상을 일찍 떠났고 그로 인하여 그들의 가정에 짙은 어둠이 드리우게 됩니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했으므로, 무엇보다도 두 아이들이 존재했기에 애순과 관식이 있는 힘을 쥐어짜내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금명이와 은명이가 동생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같이 울고 말았답니다. 이러한 자식들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관식과 애순이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삶을 제대로 살아갈 맘을 먹게 된 걸 보고 참 다행이다 싶었어요. 아이야말로 어른의 거울이라는 얘기가 머리 속에 떠올라 납득이 갔던 것도 사실입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이를 먹어가는 애순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으로 다가온 작품이었습니다. 광례와 애순의 짧지만 행복했던 한때, 계부 병철 아래서 이복동생 순남과 순봉과 함께 하다 부부가 되어 아이를 낳은 애순과 관식의 희로애락, 딸 금명이의 연애 및 결혼과 출산 속에서 접하게 된 애순과 관식의 중년, 관식이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은 애순의 곁에 자리잡은 시와 아이들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일깨워 주는 순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시청하는 동안 아쉬운 점도 꽤 존재했습니다. 제주도에 살았지만 애순과 관식은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함을 접하게 해주었고요. 애순의 딸 금명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경우에는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로 점철된 익숙한 클리셰와 더불어 흔히 남편찾기로 명명되는 에피소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단점으로 기억되고도 남았어요.
덧붙여 내레이션이 드라마에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한 점도 짚고 넘어가 볼만 했다지요. 가끔은 배우들이 내뱉는 대사와 내레이션의 분량이 비슷하게 느껴져 다큐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하는 순간이 상당했습니다. 내레이션에 담긴 내용이 감동적이었던 건 맞는데, 넷플릭스로 한국어 자막을 설정하지 않고 봤더라면 가볍게 듣고 넘길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외에 화목한 가족 판타지에 초점을 맞춘 점도 가끔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도왔답니다. 특히, 관식으로 하여금 마주하게 된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니콘이었어서 신기하게 비춰졌음을 밝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관습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라던 애순의 바람과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행동력이 멋졌고요. 관식이가 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밥을 먹다 말고 등을 돌려서 어머니, 애순, 금명이 있는 상으로 다가와 자신의 밥그릇을 가득 채운 보리콩을 덜어주는 장면은 심금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문소리와 박해준이 선보인 애순과 관식의 애틋함도 강렬한 여운을 전했음은 물론이에요. 세상에서 애순이 제일 웃기다는 관식, 코스모스가 아니라 호루라기 같아서 애순이 좋다던 관식의 말이 때때로 이해가 갔습니다. 여기에 더해 문학소녀다운 섬세함이 시 속에서 녹아났고, 애순은 결국 시인으로 시집을 내는 꿈을 이루었으니 이거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네요.
박해준과 박보검은 양관식과의 싱크로율이 완벽해서 이에 따른 압도감이 남달랐습니다. 친구의 부모님은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를 외치던 이태오 역 박해준의 연기가 너무나도 강렬했던지라 그 이후로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음에도 배우에게 쉽사리 정을 주지 못했는데, <폭싹 속았수다>를 통하여 드디어 마음을 열게 됐다고 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명대사로 양관식이 남긴 말들이 감명깊게 다가왔음을 인정합니다. 수 틀리면 빠꾸, 안 되면 빠꾸, 아빠한테 냅다 뛰어오라던 애순을 향한 젊은 관식과 중년이 된 관식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눈시울을 붉히게 했어요.
덧붙여 <폭싹 속았수다>는 주연들의 호연도 괜찮았지만, 조연 배우들의 활약상이 대단해서 이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특히 애순의 세 이모들로 찰진 제주도 방언을 구사했던 충수 역 차미경, 양임 역 이수미, 경자 역 백지원이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위의 사진 속 첫번째 자리에 앉은 애순 시어머니 권계옥 역 오민애의 존재감도 대단했어요. 애순과 관식이 부산으로 사랑의 도피를 했을 때 부산 사투리로 심장을 부여잡게 했던 여관 주인 역 강말금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더불어 공부 잘하는 금명이로 말미암아 열등감을 지닐 수 밖에 없었던 은명이의 심정도 알 것 같았어요. 근데 은명이 생일마다 관식이가 중국집에 데려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이고 장난감을 사주었다는 일화를 맞닥뜨리게 돼 훈훈함이 밀려왔습니다.
저에게는 <폭싹 숙았수다>가 신파와 가족애가 어우러진 판타지와 같았던 드라마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드라마로 꼽는다고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청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여성 삼대를 바탕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사랑과 삶이 녹아든 드라마는 배우들의 연기가 빛을 발했고, 시대적 감성에 어울리는 음악의 향연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작품이었습니다. 오프닝 곡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김정미의 '봄'이 저는 그렇게 좋더라고요.
드라마 타이틀로 쓰인 <폭싹 속았수다> 뜻이 제주도 말로 고생 많았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여러모로 작품을 제작에 힘쓴 사람들과 이를 시청한 사람들 모두 폭싹 속았수다. 매 회차를 보면서 떡밥 회수를 잘하고 촘촘한 연결고리로 이어진 스토리 전개를 경험할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광례를 쏙 빼닮은 편집장 클로이 리가 애순의 시집을 출간해 주는 걸로 마무리가 된 게 화룡점정이었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클로이 리의 이름이 혜란이라는 점도 잊지 못할 거예요.
사람들의 감수성을 파고드는 신파와 판타지가 결합된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리뷰는 여기까집니다.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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