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 전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SBS 금토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가 16회로 종영했습니다. 김은숙 작가의 새로운 작품임과 동시에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해서 호기심이 증폭됐던 것도 잠시, 두 자릿수 시청률을 끝내 지키지 못한 채로 마무리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요.
이 작품은, 평행세계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한 작품으로 색다른 시도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흥미로움을 자아냈답니다. 악마에게 맞서 차원의 문을 닫으려는 이과형 대한제국 황제 이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삶을 지키려 애쓰는 문과형 대한민국 형사 정태을이 두 세계를 넘나드는 공조를 펼치는 동안,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중심으로 담아낸 이야기가 바로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였어요.
평행세계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가치가 있긴 했지만, 이제는 구태의연하다 못해 식상해진 백마 탄 왕자님 유형의 남자와 씩씩함으로 무장한 캔디형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러브 스토리를 탄생시켰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의 전작들에서 익숙하게 봐온 캐릭터의 재탕이라고 봐도 무방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싶네요.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는 변화를 꾀했다면 좋았을 테지만 제자리였기에, 역시나 할 말은 다 한 거라고 봐야죠.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을 통하여 평행세계를 구축한 것까진 좋았으나 오프닝 영상 이미지부터 계속된 각종 논란도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져버리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끝까지 시청했던 건, 배우들의 열연과 여전히 존재하는 감칠맛 나는 대사와 소재에 따른 결말이 궁금했기 때문이었음을 밝힙니다.
게다가 의외로 1회부터 커다란 난관에 부딪쳐 자진하차를 외치는 지인들이 속출했다지요. 여러모로 드라마 초반부터 항마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상당했음을 저 또한 인정해요.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이러한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있게 돼 저는 생각보다는 재밌게 잘 봤어요.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백마 탄 왕자님으로 지칭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것은 그저 은유일 뿐이었지, 실제로 이러한 캐릭터를 눈으로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가 그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대한제국의 황제 이곤을 현실판 백마 탄 왕자님으로 만나보게 해준 것이에요!
흠잡을 데 없는 외모와 재력을 겸비한 왕이 백마를 타고 유유히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이곤 역의 이민호와 맥시무스 역의 맥시무스로 인해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이곤이 평소와 다르게 움찔거리는 맥시무스를 달래기 위해 쓰다듬으며 "왜 그래, 맥시무스."라고 말하던 순간은 그리하여 첫회의 명장면으로 남기도 했습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글거림이 전해져 오는 대사였지만, 이민호는 다양한 종류의 로맨틱 코미디 장르 속 남자 주인공을 섭렵해 온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역시나 침착하게 맡은 역할을 해내며 완벽함을 선보였습니다. 역시, 이민호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들 정도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시청자들은 일찌감치 탈주각을 재고 있었을 거라는 추측 또한 가능했음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배우의 연기는 좋았지만 앞으로 펼쳐지게 될 이야기를 감당해 낼 수 없을 거란 예감이 강해졌을 거예요. 이게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쩌겠어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자면, 배우는 죄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형사로 나라를 지키는데 온 힘을 기울이던 정태을은, 화려한 발차기를 포함해 그동안의 내공으로 다져진 무술 실력이 돋보임과 동시에 뛰어난 추리력으로 사건 해결에 임하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특히, 대한제국을 알게 되면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뛰어넘어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달려나가는 용기가 인상깊은 캐릭터이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연기가 장점인 김고은의 매력이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사에 담긴 개그 코드도 제대로 캐치해 냄에 따라 이로 인한 표현력 역시도 기대 이상이상임을 확인하게 해줘서 좋았어요. 전형적인 캔디형 여자 주인공에서 벗어날 순 없었지만, 그거야말로 제작진의 의도에 따른 것이었을 테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합니다.
*조은섭*
*조영*
평행세계라는 설정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에는 동일인물이 살고 있어 배우들 대부분이 1인 2역을 소화해 내야 했습니다. 생년월일, 지문, DNA 등이 똑같지만 이름과 직업 등은 다른 게 특징이었지요. 그로 인해 다재다능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 중에서도 우도환의 1인 2역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조영은 대한제국의 황실 근위대 대장으로 주군인 이곤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한 인물로, 독보적인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게 장점이었어요. 반면에 조은섭은 대한민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는 동시에 쌍둥이 동생 은비까비의 육아까지 책임지고 있는, 친화력이 뛰어난 캐릭터였답니다.
유창한 사투리와 서글서글한 성격에서 개성이 느껴지던 조은섭은 평소에는 허술해 보였지만 위험한 순간마다 남다른 대처 능력으로 유연하게 상황을 극복해 내며 도움을 주는 강점이 있었고, 조영은 똑부러지는 성격을 보유한 반면에 융통성이 없어 잠시 동안 평행세계에 머무는 동안에도 정체가 발각될 위기에 처하기 일쑤였어요. 특히, 은비와 나리에게 말이죠.
아마도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는 배우 우도환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만든 작품으로 기억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뚜렷한 개성으로 1인 2역에 차별성을 두었으니, 칭찬할 만 합니다. 이로 인해 서브 남주 띄우기에 한 획을 그었다고 알려진 김은숙 작가의 능력 또한 건재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1인 2역을 소화한 배우들을 한 장면에 넣기 위해 사용된 연출적 효과도 훌륭했습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인물을 보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악의를 품은 채로 만나러 왔다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겠지요.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정태을을 꼭 닯은 대한제국의 루나는 근친왕 이림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아 그게 참 다행스러웠습니다. 태을이 없어지면 원했던 삶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선택으로 나아가는 루나의 모습이 옳은 걸 알면서도, 지금껏 힘겹게 살아 온 과정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어요.
대한민국의 나리나리명나리는 대한제국의 명승아보다 더 우월한 존재감과 월등한 재력으로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캐릭터의 쓰임새는 그에 미치지 못해 씁쓸함을 전해주었습니다. 특히, 나리의 경우에는 밀크티 홍보를 위해서만 출연하는 분위기가 감돌았어서 더 그랬어요.
밀크티를 주력으로 판매하는 카페 사장으로 가게를 찾아 온 손님들에게 음료를 판매하고 직접 만들어 마시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슈퍼카 여러 대를 보유한 인물로 PPL을 위해 소모된 걸로 보여져 안타까움이 더해졌습니다. 그치만 김용지라는 좋은 배우를 처음 알게 해준 건 맞으니까 차기작은 기대해 보기로 합니다. 일단, 눈도장은 제대로 찍은 셈이라고 보여지니까요.
사실,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는 과도한 PPL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드라마에 제작협찬이 들어오는 일은 당연한 거고, 그리하여 작품 속 PPL을 통한 상품 노출에 시청자들도 익숙해진 지 오래입니다. 그치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어서 당황스러웠어요.
강력3팀에서 장미로 불리는 막내 장미카엘(강홍석)이 잠복수사 중 태을에게 컵라면과 함께 봉지김치를 품에서 꺼냈는데, 그 김치를 건네주기 전의 포커스가 장미가 아니라 볶음김치 포장지에 맞춰졌다는 점에서 저는 그만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둘이 함께 있을 때 보여진 PPL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장미가 화장품에 관심을 갖자 태을이 보습밤에 대한 설명을 홍보문구 그대로 읊는 듯한 대사 또한 폭소가 터져 나오게 만들어 고개를 절레저레 내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피피엘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대사로 대체할 수는 없었던 걸까요? 가끔은 드라마를 보는 건지 광고를 보는 건지 모를 순간이 겹쳐져서 탈주에 대한 고뇌를 잠시 했습니다만, 안 한 제가 참 대단하게 여겨지기도 하네요. 제작진은 부디, 반성해 주세요......
그 와중에 정태을과 이곤의 러브 모드는 참으로 달달했습니다. 단, 태을을 부르는 이곤의 애칭이 "자네."라는 점과 쉽게 부를 수 없는 이름을 가진 황제로 인해 태을은 애칭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서 굉장히 독특한 관계를 이어가는 둘이 신기해 보일 때도 없지 않았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는 평행세계 및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극대화시키며 이을 커플을 바라보게 만들었는데요, 역시나 사랑이었기에 가능한 두 세계의 결합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정확히 따지자면, 대한민국과 대한제국 속에서 두 사람만이 이어갈 수 있는 운명이라고 봐도 되겠지요.
김고은과 이민호의 케미가 날이 갈수록 무르익어서 이 또한 예뻤어요. 일각에선 배우들이 하는 연기가 예전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혹평이 있기도 했지만, 이건 아마도 캐릭터 자체가 전작과 비슷하다 못해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기에 따라오는 부작용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작품에 더해 배우 연기에 대한 호불호도 취향에 따라 갈릴 수 밖에 없는데, 저는 그래도 호에 가까웠어요.
아, 그리고 작가가 본인의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다시 기용하지 않는단 원칙을 깨버린 이유도 잘 알겠더라고요. 쉽게 범점할 수 없는 캐릭터만의 분위기를 살려내기에는 이민호와 김고은, 두 배우가 찰떡이긴 했어요.
결론적으로만 따져 보자면,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는 치킨 PPL의 극치였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이민호를 모델로 내세운 치킨 메뉴 여러 가지가 회차마다 등장하는 순간이 상당했거든요. 태을로 인해 대한제국에 존재하지 않는 음식인 치킨을 이곤이 처음 접한 이후로, 대한민국에 올 때마다 찾는 단골 가게가 치킨집이 된 것은 물론이고요. 조영은 태을에게 소맥을 배워서 치킨을 옆에 둔 채로 술만 마시며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보여줬고 루나도 대한민국에 오자마자 혼밥을 대신해 혼치킨을 즐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그치만 딱 거기까지! 저는 뭐랄까, 치킨까지는 용납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먹고 싶어지기도 했거든요. 그치만 커피, 김치, 브랜드 네임까지 그대로 노출되던 롤케이크, LED 마스크 등등은 안 되겠더라고요. 오죽하면 이곤은 PPL 하려고 등장하는 게 아니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겠어요. 할 말은 많지만 더 하지 않겠습니다.
그 와중에 치킨 만큼은, 바삭한 튀김옷을 배어물 때 들려오던 바사삭 소리와 씹어먹을 때의 찰지고도 부드러운 식감이 귓가에 들려올 때는 야식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하지만 주문은 안 했다는 것이 반전!
대한제국 황제 이곤은 리더십도 탁월하고 수학자로의 능력도 최고였으며, 요리 실력 또한 예상을 벗어나며 백마 탄 왕자님의 최고봉을 선사한 캐릭터였습니다. 이에 걸맞는 이민호의 피지컬과 비주얼, 태을을 향한 미소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고요. 볼수록 잘생겼어요+_+
그치만 더 이상 백마 탄 왕자님을 바라지 않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물의 설정값도 달라져야 함을 여실히 느꼈으니, 이에 걸맞는 캐릭터를 갖춘 배우 이민호도 만나보기를 고대해 봅니다.
대한제국의 악역으로 평행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근친왕 이림과 그의 앞에서 자신의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던 구서령 총리의 만남은 또다른 위기를 선사할 것 같아 흥미로웠는데 싱겁게 끝나 버려서 조금 시원섭섭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것을 내어주길 원치 않았으니 손을 맞잡을 이유가 없었던 거지요.
구서령은 여성 총리로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캐릭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와이어 없는 속옷 착용을 거부하는 장면부터 당황스러움을 경험하게 해줘 실망만 안겨주고 떠나버렸네요. 와이어와 관련된 대사가 두 번 정도 나오길래 나중에라도 혹시나, 옷에 무기라도 감추고 들어와 일을 벌이는 게 아닐까 싶어 살짝 두근거렸는데 그저 제 생각이 너무 앞서 나간 거였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위로 올라가고픈 욕심을 대놓고 표출하던 모습을 정은채가 잘 살려줘서 그것만은 흡족했답니다.
근친왕 역의 이림은 악역으로 놀라운 포스를 뽐내며 시선을 압도했습니다.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해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을 카오스로 만들어버린 이림의 지략은 두 세계를 가리지 않고 먹혀들며 놀라운 장악력으르 선보였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이정진의 악역 연기는 꽤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은데, 소리내어 웃는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웃음소리와 표정이 전하는 섬뜩함이 악역다웠답니다.
작가가 구축한 평행세계는 생각보다 촘촘했습니다. 대한민국과 대한제국 사람들이 한데 섞여서 살아 온 지 꽤나 오래 됐음을 보여주는 장치가 곳곳에서 보여지고 있었으니까요. 이중에서도 반전의 키를 손에 쥔 인물로 강신재를 꼽는 게 가능했습니다. 본인도 모르게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넘어와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으니 말이죠.
어쨌든, 그래도 이림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나 자신의 마음을 따라서 악에 굴복하지 않고 길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감명깊었습니다. 그러니 강신재 역의 김경남 역시도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를 통해 수혜를 입은 배우라고 봐도 될 듯 합니다. 연기는 다른 작품에서도 잘했지만 이번 드라마에서 보여준 능력치가 있어서 더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이번에 드라마 속에서 가장 의문을 갖게 했던 인물을 요요소년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요요에 매달린 빨간 실, 아더왕 책을 읽고 있던 것을 계기로 비롯된 이림과의 의미심장는 대화는 물론이고 루나, 태을, 송정혜(서정연)의 앞에 나타나 풀어놓던 이야기에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회차가 흐를수록 알게 되었거든요.
이를 통해 요요소년(김보민)의 정체는 만파식적이라는 답을 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는 누구냐는 질문을 향한 대답을 유추해 보면 신보단 만파식적에 더 가깝다는 걸 확인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굳이 만파식적의 현신이 등장해야만 했던 이유는, 평행세계와 관련된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조금이나마 더 쉽게 이해시키고자 해설자 역할을 부여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어요.
나이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세계의 흐름을 명확히 파악한 상태인 데다가 사람을 꿰뚫어 보는 능력 또한 갖췄음을 깨닫게 해줘서 가끔씩 모습을 보일 때마다 반가웠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는 대한제국 선황제 이호(권율)의 이복형이자 이곤의 큰아버지인 금친왕 이림이 역모를 일으킴으로써 시작됩니다. 두 개의 세계를 일컫는 만파식적을 차지하려다 쪼개진 반쪽만을 손에 쥐고 자취를 감춘 이림과 또다른 반쪽을 갖게 된 이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만파식적을 지닌 채 차원의 문을 열게 되는데, 이곤은 이림으로 인한 세계의 균열을 막고자 그를 찾아 헤매다 대한민국에서 정태을을 만나 사랑에 빠져요. 역모의 밤에서 어린 이곤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이 정태을의 명찰이었기 때문에요.
그러나 역모의 밤에서 어린 이곤을 구한 건, 25년 후에 차원의 문을 넘어 이동한 이곤 자신임을 알게 되고 이로써 만파식적의 비밀에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두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 큰 결심을 하기에 이릅니다.
저는 사실, 어린 이곤을 구한 게 정태을이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물론,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명찰이 반전을 위한 복선이었으므로 그렇게 될 리는 만무했지만요. 이로 인해 둘의 사랑이 더 단단해지는 계기이자 정태을의 캔디형 캐릭터를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줄 설정으로 자리잡아도 무방할 것 같아 보여서요. 그치만 이건 그저 저의 착각이었을 뿐이었네요. 하하!
대신, 이곤이 이곤을 구한 것처럼 이 세상에서 나를 구원해 줄 사람은 오직 나 뿐이라는 진실을 공고히 해주는 메시지를 일깨워줬기에 만족합니다. 평행세계 판타지 로맨스 속에서 다른 누구도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없음을 알리는 장면의 깊이가 좋았어요. 사랑은 사랑이고, 나는 나고! 간단명료한 깨달음에 머리가 맑아졌답니다.
이와 함께 만파식적의 비밀도 심도깊게 다루며 호기심을 충족해줘서 괜찮았어요. 평행세계 속 자신이 태어난 세상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 온 인물이 생각보다 적지 않았고, 적군이 아닌 아군 또한 상당해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 이 역시도 다행스럽게 여겨졌답니다.
결말에 다다라서, 달라진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의 평행세계가 평온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게 돼 이 또한 좋았습니다. 그중에서 재밌었던 건 구서령 총리와 김비서의 달라진 상하 관계, 강신재와 강현민과 루나가 행복을 찾게 된 얘기, 황실 대변인이자 이곤의 비서실장이었던 모비서(백현주)가 모현아 총리로 임명되는 순간을 맞닥뜨릴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나는, 나를 선택한 나의 운명을 사랑하기로 한다."
(태을)
-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 명대사 -
평행세계를 소재로 사용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지만, 꼬이고 꼬인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을 좀 더 쉽게 풀어놓았더라면 좋았을 법 했습니다. 저는 평행세계라는 개념을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로 처음 알게 됐는데,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에서의 풀이법이 좀 더 어렵게 느껴져서 이 점은 좀 아쉬웠습니다.
그치만 당간지주, 만파식적 등, 우리나라의 설화를 바탕으로 평행세계 이야기를 이어나갔던 점은 눈여겨 볼만 했어요. 설화와 판타지의 만남이 아우르는 세계관을 앞으로 좀 더 다듬어서 또다른 작품으로 써내려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여기서 한 가지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전형적인 캐릭터 특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물들을 작가의 드라마에서 만나보고프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차라리 백마 탄 공주 유형의 여주와 캔디형 남주가 더 신선할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앞으로는 남주 못지 않게 여주에게도 공을 좀 더 들여주었으면 좋겠어요.
작가가 지닌 대사의 힘과 저력이 여전했으니, 다음에는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해요.
두 사람의 세계는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정태을과 대한제국의 이곤은 형사와 황제로 주어진 삶을 살며 사랑하는 운명을 선택해 훈훈한 해피엔딩을 만끽하게 도왔습니다. 차원의 문이 열리는 곳 어디로든 마음껏 여행을 즐기는 두 사람의 특별한 시간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전했어요. 미소도 어여쁜 둘이에요+_+
그렇게 자신들의 선택한 운명을 사랑하며 "오늘만을 영원히", 라는 모토를 간직하며 살아가게 된 둘의 평행세계 판타지 로맨스는,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의 마지막 장면을 채우며 종영했습니다.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지만, 남다른 소재를 차용한 것에 대한 의미도 없지 않기에 절반의 성공을 거둔 드라마로 기억될 거라 믿습니다. 그치만 과도한 PPL 만큼은,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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