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tvN 토일 드라마로 주말을 책임졌던 [작은 아씨들]이 12부작으로 종영했습니다. 약 150년 전 루이자 메이 올콧으로부터 탄생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고전의 색다른 재해석을 통하여 예상을 뛰어넘는 잔혹동화 속 해피엔딩을 만나보게 해줘서 흥미롭기 그지 없는 시간을 보냈음을 인정합니다.
작품을 시청하기 전까지만 해도 책의 제목만 따온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캐릭터는 물론이고 스토리적으로도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재밌었어요. 기본적인 틀은 닮아 있었으나 정서경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필력이 발휘됨에 따라 남다른 퀄리티의 미친 드라마를 만나보게 돼 짜릿했답니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가난하지만 돈독한 우애를 나누며 자란 오인주, 오인경, 오인혜 세 자매가 거액의 돈을 둘러싼 음모에 휘말리며 펼쳐지는 에피소드가 중심 줄거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건설 회사 경리로 일하던 인주가 하나 뿐인 직장 동료이자 마음을 나누게 된 친구와 다름 없었던 진화영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뜻밖의 사고에 휘말리며 맞닥뜨리게 된 흐름이 눈여겨 볼만 했어요.
회삿돈 700억을 횡령하고 불법 비자금 장부를 빼돌린 후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화영은 죽기 전, 20억의 현금을 인주에게 남겼는데 이로 인한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때부터 박재상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는 최도일과 감춰진 돈을 찾아내려다 원령가에 발을 들인 인주의 위험천만한 선택, 기자로의 본분을 다하고자 물불 가리지 않고 원령가의 어두운 비밀을 파헤치려 애쓰던 인경의 정의, 박재상과 원상아의 하나 뿐인 딸 효린과 절친으로 가난한 집을 벗어나 원령가에 머물게 된 인혜의 결심이 각기 다른 상황을 마주하게 도우며 각자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소설 [작은 아씨들]이 꿈과 사랑으로 가득한 네 자매의 일대기를 선보였던 것과 달리,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횡령을 시작으로 살인과 폭력이 더해진 스펙타클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 장르에 충실하며 현실에 걸맞는 스토리를 맞닥뜨리게 해줘 상반된 온도차가 강렬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 자매가 똘똘 뭉쳐 위기를 극복해 나가던 순간들이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쫓고 쫓기는 추적극과 서로를 위해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야기가 교차되며 만나볼 수 있었던 촘촘한 구성은 감탄을 불러 일으켰답니다. 치밀한 전개로 구축된 여성서사의 묘미가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만의 강점이라고 봐도 무방했어요.
모든 악의 근원이 눈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던 박재상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틈날 때마다 기회를 엿보며 서슴없이 만행을 저지르던 원상아였음이 밝혀졌을 때의 짜릿함도 기대 이상이었다죠. 환각을 경험하게 만드는 푸른 난초로 인한 연쇄 살인과 정란회의 정체 및 이와 관련된 내막마저 혀를 내두르게 하는 순간이 상당했습니다.
이와 함께 드라마 [작은 아씨들] 8회 엔딩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히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진화영인 척 꾀어내 700억을 손에 넣으려 했던 원상아에게 총을 겨누던 오인주의 표정은 가히 압권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김고은의 연기에 다시금 반하지 않기가 더 힘들 정도였어요.
박장혁 촬영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디테일한 연기를 하는 배우가 김고은이었다고 하니, 오인주와 김고은의 싱크로율이 완벽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배우들의 열연과 탁월한 스토리 외에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미장센으로 각광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류성희 미술감독이 선사한 판타지 가득한 공간의 매력이 김희원 연출의 섬세함과 조화를 이뤄내며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일이 적지 않아서 눈이 즐거울 때가 많았답니다.
특히, 원령가에 자리잡은 난실은 화룡점정이었다고 봅니다.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게 되면서 오인주(김고은)와 최도일(위하준), 오인경(남지현)과 하종호(강훈), 오인혜(박지후)와 박효린(전채은)이 힘을 합쳐 위험에 대처하는 자세 역시도 흥미진진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인주와 도일의 관계가 썸으로 그치며 재회를 기약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반면, 인경과 종호의 사랑은 연애로 이어지며 현재 진행중, 인혜와 효린은 영화 [아가씨]의 숙희와 히데코를 연상시키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만나게 돼 만족스러웠습니다.
덧붙여 빌런으로 등장한 박재상(엄기준)과 원상아(엄지원)의 애증도 빼놓을 수 없었는데요, 아내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던 재상의 헌신은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근데 여태껏 저지른 죄가 많았기에 박재상의 최후가 그리 슬프진 않았어요.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 등장하는 주요 남성 캐릭터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찐사랑꾼이었는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형을 오롯이 표현해낸 것 같아 이 점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치만 뭐니뭐니 해도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접하게 된 사랑 중의 사랑은 화영인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눈물겨웠어요. 죽음에 앞서 인주에게 많은 돈을 남긴 화영, 화영의 죽음이 위장이었음을 깨닫고 분노하지만 원상아의 협박에 언니를 구하려 한달음에 달려가던 인주, 싱가포르에서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한 인주를 대신하여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모자라 원상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도우려 다친 몸을 이끌고 온 힘을 다하던 화영의 절절함은 잊지 못할 거예요.
인주의 행복을 바라던 화영, 화영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원하던 인주는 피로 맺어진 혈연을 뛰어넘는 우정의 본보기로 심금을 울렸습니다.
한편, 드라마 [작은 아씨들] 최고의 반전으로는 앞서 끄적였던 진화영의 위장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게 진화영의 큰 그림으로 원상아를 향한 복수가 목적이었음을 알게 돼 그 마음이 이해가 가긴 하더라고요. 다만, 인주가 말려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던지라 이에 따른 후폭풍이 어마어마해서 놀라웠을 거예요. 그래도 사실을 폭로하고는 죄값을 치르겠다고 밝혀 이 점도 감명깊은 여운을 전했습니다.
진화영 역 추자현은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렸으나 작품에 없어서는 안될 씬 스틸러로 멋진 활약을 접하게 해줘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드라마 초반에서 맞닥뜨리게 된 추자현의 무게감이 작품을 계속 시청하게 만든 힘이었다죠.
덧붙여 최종 빌런으로 본색을 드러낸 원상아 역 엄지원의 연기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전사가 되고 싶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오직 자기자신 밖에 모르는 인물로 손에 닿는 건 부숴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미친 인간임을 꿰뚫어 본 이들로 말미암아 욕망을 해소하지 못하게 되자 닫힌 방을 시작으로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하여 죽음으로 안내하던 냉혹함에 소름이 돋을 때가 없지 않았어요.
여기에 더해 부유한 집안의 딸다운 럭셔리한 패션 스타일과 우아함을 앞세워 내재된 악의 본성을 야금야금 표출하다 결국에는 폭발해버리던 순간이 충격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지요. 그 와중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않고 본인의 꾀에 속아 인주와 화영을 대신하여 염산으로 가득한 난실에서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은 점이 빌런에 걸맞는 마지막이라고 여겨졌어요.
인주의 계좌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700억은 도일 100억, 효린 100억, 인혜 100억, 인경 100억, 인주 300억으로 분배가 이루어지며 세 자매가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결말로 완성돼 흡족했습니다. 인혜의 편지 속에서 자매들을 위한 집이 아닌 인주만을 위한 아파트를 구하라던 얘기도 감동적이더라고요.
번외로, 드라마 [작은 아씨들] 12회에서 700억 횡령 혐의로 감옥에 갔던 인주가 풀려났을 때 인경과 종호가 기다리고 있다가 두부를 건네주던 장면은 웃음을 터뜨리게 도왔습니다. 요리를 잘하는 종호답게 두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이쑤시개에 꽂아 한 조각을 인주에게 건네던 배려와 센스가 친절함 그 자체라 보기 좋았어요. 이 부분은 제작진의 세심한 디렉팅으로 연출된 장면일텐데, 캐릭터의 성정을 부각시키기에도 안성맞춤이었던지라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어요.
마지막으로 까메오 출연으로 관심을 집중시킨 신현민 역 오정세, 원령가 장남 원상우 역 이민우, 결정적인 사건으로 나아가게 만든 고모할머니 오혜석 역 김미숙, 박재상재단 실장 고수임 역 박보경의 열연이 훌륭했음을 이야기해 봅니다.
이외에도 매회 포착되는 장면 연출 속 디테일한 묘사 및 배우들의 호연이 스토리와 잘 맞아 떨어져서 긴장감을 손에 쥔 채로 몰입하며 잘 봤습니다. 잔혹동화와 해피엔딩을 같은 작품 안에서 만날 수 있어 이 점도 마음에 들었답니다.
김희원 연출과 정서경 작가를 필두로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출연진들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감배의 어우러짐이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음을 써내려가며 오늘의 드라마 리뷰를 마칠게요. 고전의 재해석 속 욕망의 서사가 돋보인 세자매의 행보가 미친 드라마임을 입증시키며 마무리가 돼서 통쾌했어요.
'드라마 취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넷플릭스 영 로열스 시즌2 OST가 매력적인 스웨덴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 속으로 (0) | 2022.11.23 |
---|---|
드라마 [슈룹] : 서서히 밝혀지는 권의관 정체 추측해 보기(토지선생과의 관계) (0) | 2022.11.15 |
넷플릭스 드라마 [글리치] : 외계인의 행방을 쫓는 기상천외 SF판타지 버디물 줄거리 결말 (쿠키영상 있음) (0) | 2022.10.10 |
드라마 [모범형사] 시즌2 : 권선징악으로 통쾌함을 심어준 추적극 빌런 천나나 김효진 유쾌한 OST의 묘미 (0) | 2022.09.21 |
드라마 [빅마우스] : 개운치 않은 결말과 여성 캐릭터 활용에 있어 아쉬움을 남긴 스릴러 (0) | 2022.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