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예측불허의 스토리 전개를 선보였던 사극 드라마 [슈룹]이 16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초반에는 마마들의 치열한 교육열을 중심으로 왕세자 경합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사극판 [스카이캐슬] 및 [세자듀스]라는 얘기가 종종 들려왔는데, 회차가 거듭될수록 상상을 초월한 이야기를 확인하는 일이 가능해 놀라움이 커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작품의 결말과 관련된 얘기를 끄적여 볼까 하는데요, 뜻밖의 수미상관 엔딩이 인상깊었음을 미리 밝혀 봅니다. 중전 임화령(김혜수)은 세자(배인혁)의 사인이 간수로 인한 독살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범인 권의관(김재범)의 정체가 태인세자의 동생인 영원대군 이익현으로 형에 대한 복수를 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는 대비(김해숙)가 태인세자를 독살한 방법과 같았습니다.
이익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리 계획해 둔 역모에 박차를 가하지만, 대비의 음모로 자신의 아들인 의성군(강찬희)의 칼에 찔려 생을 마감합니다. 황숙원(옥자연)은 눈 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망연자실하고 말아요. 이에 앞서 이익현은 황귀인의 부친 황원형(김의성)을 죽음으로 이끈 바 있습니다.
한편, 이호(최원영)는 중전의 설득으로 지금껏 외면해 왔던 과거의 진실을 바로잡아 나가요. 태인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기록을 올바르게 수정함과 동시에 어긋난 모성애와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혀 죄를 저지른 어머니 대비를 유폐시키고, 폐비 윤씨(서이숙)의 복권을 명합니다.
하지만 대비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죠. 그 누구도 나를 벌할 수 없다며 대례복을 갖춰입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을 암시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중전이 되자마자 왕이 세상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대비가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이의 최후는 고개를 내젓게 만들고야 말았어요.
그 속에서 왕자들의 뒷이야기를 속속들이 마주할 수 있었던 점은 감명깊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남대군(문상민), 일영대군(박하준), 호동군(홍재민)을 제외한 왕자들은 궁 밖에서 새로운 삶을 펼쳐나갔답니다. 의성군은 폐비윤씨의 요청으로 인하여 목숨을 부지하긴 했으나 정신줄을 놓은 것으로 보여지는 황숙원과 허름한 집에서 살아가게 되었고요. 보검군은 세자와 나랏일을 의논하기 위하여 궁궐을 오갈 때마다 태소용(김가은)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것을 약속했어요. 답답한 궁을 떠나 자유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 계성대군(유선호)은 화령에게 그림으로 안부를 전했고, 심소군(문성현)은 아이의 아빠가 될 것임을 고귀인(우정원)에게 털어놓으며 모자 간의 애틋한 한때를 누렸습니다.
호동군은 살을 빼겠다고 마음 먹었다가 옥숙원(이화겸)의 조언에 곧바로 맛있는 음식을 찾으며 웃음을 전했고, 일영대군은 날아보겠다고 연을 들고 지붕에 올라감으로써 화령의 빠른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무안대군(문상현)은 궁 밖에서 천민 출신 초월(전혜원)과 딸 아라를 기르며 살면서도 궁 안을 제집처럼 드나들기에 바빴음은 물론이에요.
이와 함께 세자가 된 성남대군은 훗날 원손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주고 청하(오예주),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와 궁궐을 벗어나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줘 이 점도 눈여겨 볼만 했습니다. 형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 거란 사실을 일깨워주던 내레이션이 심금을 울렸거든요. 민휘빈(한동희)과 원손이 빠르게 궁으로 돌아오도록 도왔으니, 더 이상의 말은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이렇듯 드라마 [슈룹]이 해피엔딩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 16회에서는 예상치 못한 존재가 눈길을 잡아끌고야 말았으니, 그것은 바로 이호와 대비가 다정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등장한 김치였습니다. 대비가 김치 좀 드셔보라고 하자 맛을 본 주상이 역시 우리 것이 최고라며 감탄하던 찰나가 웃음을 빵 터뜨리도록 만들기에 충분했어요.
아무래도 여태껏 방영이 이루어지는 동안 중국풍 논란에 휩싸였던 것을 의식한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떤 심정인지는 이해가 가는데 대비의 처절한 죽음 그 앞자락에서 떠올린 것치고는 김치가 주인공으로 부각되는 느낌이 강해서 실소가 터져 나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덕택에 이 장면을 비비고 김치 PPL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듯 합니다.
드라마 [슈룹] 마지막회에는 각양각색의 수미상관 엔딩이 포착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저는 이 장면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포스터에서는 어린 성남대군에게, 3회 엔딩에선 성 정체성으로 인하여 고뇌하던 계성대군을 위하여 화령이 슈룹(우산)을 씌워주는 모습이 눈에 쏙 들어오며 감동을 선사했는데 16회에서는 나름의 특별한 반전을 맞닥뜨리게 돼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슈룹으로 고군분투했던 화령이 이제는 세자가 씌워준 우산 속에서 비를 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장성한 아들이 엄마의 슈룹이 되어 든든하게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생각했던 것에 비하여 훨씬 더 방대한 서사를 보유한 드라마 [슈룹]이 이를 매끄럽게 풀어내려 애쓰는 걸 보면서도 묘하게 일말의 산만함과 의문스러움이 동시에 밀려올 때가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말 만큼은 훈훈하게 잘 마무리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봅니다. 근데 대비가 태운 검안서와 중전이 갖고 있다가 주상에게 내민 검안서 중 어떤 게 진짜인 걸까요? 화령이 언제 이러한 전략을 세워서 실행에 옮겼는지를 보여주지 않아 궁금해졌습니다. 속시원하게 해소되어야 할 부분이 상당했는데, 이런 식으로 가볍게 넘어가 버리는 일이 많아서 아쉬웠네요.
덧붙여 드라마 [슈룹] 수미상관 엔딩은 이게 진짜였습니다. 세자와 화령이 우산을 쓰고 비 오는 궁궐을 거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난 다음이요. 화령이 씌워준 우산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원손이 포인트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참고로 원손 역으로 만나 본 아역배우의 이름은 서우진이며,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에서 조서우 역을 맡아 열연한 바 있습니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은 서우진의 다음 행보도 그런 의미에서 기다려집니다. 원손 역할도 멋지게 잘 해내서 눈을 쉽사리 떼지 못했답니다.
그리하여 화령이 원손의 우산이 되어준다는 점을 명확하게 드러낸 장면도 드라마 [슈룹]의 명장면으로 꼽아 봅니다. 1회 7.6%로 출발해 16회에서 평균 16.9%로 자체 최고의 시청률로 퇴장하게 돼서 이 역시도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봐도 될 듯 하네요.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 등이 적절히 어우러진 사극 드라마의 색다른 매력을 경험하게 해줘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드라마 [슈룹]의 일등공신으로는 중전 임화령 역으로 활약한 배우 김혜수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코믹과 정극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현명하고 자애로운 국모이자 가끔은 다혈질적인 면모를 뽐내는 열혈 중전으로 혼신의 연기를 선보여서 다시금 반했습니다.
눈썹만으로도 디테일한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배우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짜릿했어요. 젊은 배우들의 에너지와 중년 배우들의 호연이 조화로웠던 작품 속 김혜수의 열연을 잊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의외의 씬 스틸러, 김치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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