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와 결말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된 드라마 [안나]는 수지를 원톱 주연으로 내세움과 동시에 흥미로운 소재를 통한 스토리 전개 속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이었습니다. 사소한 거짓말로부터 비롯된 한 여자의 비극적 운명이 보는 내내 서늘함을 맞닥뜨리게 함에 따라 안타까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음은 물론이에요.
드라마 [안나]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원도 홍천에서 작은 양복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청각장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유미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어요. 가난한 집안에서 본인의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점만 제외하면 행복한 생활을 보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유미는 수능을 몇 개월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음악 선생과 연애를 하던 일이 발각돼 서울로 강제전학을 갑니다. 하지만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아 재수를 하기로 마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게는 그 사실을 숨기고 이현여대에 합격했다며 거짓말을 해요. 헌데 하필이면, 같은 하숙집에 머무르던 한지원이 이현여대 2학년에 재학 중임을 밝히며 친근하게 대해주자 재수생임을 숨긴 채 대학생 행세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지원으로 인해 서울지부 대학교지 편집부 총회에 참석한 유미는 여기서 만난 강재호와 사귀다 동반유학 후 결혼을 결심하지만, 공항을 떠나기 전 걸려 온 재호의 어머니로 인해 정체가 탄로나며 변화을 맞이합니다.
고졸의 경력으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이어가며 생계를 유지하던 유미는 마레 갤러리에 입사해서 일을 해오다 안나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그곳의 작은 이사였던 현주의 인생을 훔쳐 제2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현주의 영어이름이 안나였거든요. 이로써 현주의 학력으로 학원 강사 자리를 따내고,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앞길이 창창해 보이는 벤처기업 아이티솔리드 대표 최지훈과 결혼하며 부유한 현재를 영위해 나가려 애씁니다.
하지만 현주는 뜻밖의 재회를 통하여 비밀을 지켜주는 대가로 30억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지훈이 국회의원 출마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며 안나가 된 유미는 또다시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야 말아요. 이 와중에 현주는 유미 몰래 지훈에게 연락을 취했다 죽음을 맞이하고요. 유미는 지훈과 미국으로 떠나기 전,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만행과 남편 지훈의 악행이 담긴 USB를 지원에게 건네며 진실을 밝혀 달라고 당부합니다.
유미는 아주 잠시나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삶을 살아가던 안나가 되어 가짜 인생을 손에 넣은 채 불안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냈어요. 그 속에서 학원 강사와 대학 교수로 탁월한 실력을 뽐내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돼 고개를 내젓게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신분과 정체는 가짜인 반면, 능력 만큼은 진짜였으니까요. 이러한 이유로 거짓말을 반복하던 유미의 최후가 해피엔딩이 아닐 것임이 자명해 보여 씁쓸함을 전한 순간도 존재했음을 밝혀 봅니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에서 단연 눈에 띄었던 인물은 이유미와 이안나를 동시에 연기한 수지였습니다. 아이돌 가수에서 배우로 거듭나는 동안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 온 걸로 아는데, 이 작품에서 드디어 배우로 안착한 느낌을 경험하게 해줘서 놀라웠어요. 차분한 저음과 강렬한 눈빛을 중심으로 대사에 감정을 실어 희로애락을 폭발시키던 찰나가 눈여겨 볼만 했습니다. 게다가 1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20년의 세월을 화면을 통하여 전달하는데 어색함이 없었어요.
다만, 가끔씩 묘하게 발성과 대사톤이 아쉬움을 접하게 해줄 때가 많아 이 점은 보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원톱 주연으로 나서서 확인하도록 도운 열연이 기대 이상이라 보기 좋았어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유미가 안나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해 내려 고군분투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것 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덕분에 지원, 현주, 지훈으로 등장한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훌륭해서 이에 따른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도 기억에 남았어요.
드라마 [안나]는 정한아 작가의 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원작으로 제작된 것 또한 특징입니다. 제가 꽤 오래 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드라마가 소설과는 꽤나 다른 부분이 상당해서 [안나]를 시청한 뒤 [친밀한 이방인]을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간만에 다시 페이지를 넘겨보려고 합니다.
이와 함께 드라마 속에서 안나가 약국에 들렀을 때 약사가 읽고 있던 책이 [친밀한 이방인]이라서 이 점도 반가움을 전하던 때가 존재했습니다. 드라마와 원작 소설의 연결고리를 의외의 순간에 마주하게 돼 재밌었어요.
눈부신 미모에 출중한 연기력까지 장착해 나가고 있는 수지의 면모가 도드라졌던 드라마 [안나]였습니다. 작품 속에서 다채로운 스타일링과 패션 스타일로 매 순간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도 인정이에요.
그리고 저는 같은 건물에 사는 현주와 마주치지 않으려 매번 계단을 올라 집으로 향할 수 밖에 없던 유미의 모습도 감명깊게 다가왔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고자 각기 다른 옷과 구두를 착용하고 움직이던 유미의 힘겨운 발걸음과 고단한 표정이 묘하게도 마음 속에 오래 남았답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안나]의 빌런으로 존재감을 뽐낸 이현주 역 정은채와 최지훈 역 김준환의 호연도 돋보였습니다. 현주는 원하는 것을 손쉽게 얻어 왔기에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일이 익숙한 캐릭터로 유미에게 박탈감을 선사하며 안나로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준 면모가 대단했고요. 지훈은 유미의 실체를 알면서도 국회의원이 되는데 아내 안나가 필요하기에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인물로 섬뜩함을 자아냄에 따라 이목을 잡아끌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보유한 아들 민재를 사촌 아이로 속여 유미와의 결혼식에서 기념촬영을 할 때부터 전해져 오던 쎄한 느낌은 다 이유가 있는 거였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수지 못지 않게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더없이 완벽했던 정은채와 김준한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정은채의 영어 실력과 김준한의 사투리 연기도 귀를 기울이게 도왔답니다. 둘 다 극중 또라이로 도른 자 역할을 제대로 해내서 멋졌어요.
한지원 역의 박예영은 유미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존재로 따뜻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꿈꾸었던 기자로 살아가며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안나가 된 유미의 진실을 지원이 추적해 나가는 동안 지금껏 알아차리지 못했던 또다른 얘기를 만나볼 수 있어 이 점도 강렬한 여운을 남겼어요.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구경이]에 이어 [안나]에서도 박예영의 연기를 보는 일이 가능해 좋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드라마 [안나]의 결말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할게요. 서울시장에 당선된 지훈은 유미와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아들 민재를 보러 간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내의 정신건강이 걱정된다는 명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충격을 받은 유미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지훈을 보고 달아날 기회를 노렸는데, 때마침 도로 위에 사슴이 나타나며 둘이 탄 차가 전봇대와 충돌해 사고가 납니다. 당황해서 핸들을 이리저리 꺾어대는 지훈 몰래 유미가 슬쩍 자동차에 손을 쓴 것도 한 몫을 했다지요.
유미는 겨우 자동차에서 빠져나와선 갖고 있던 라이터로 가방에 불을 붙여 지훈이 탄 차에 던져버리고 혼자만의 길을 떠납니다. 그렇게 지훈이 죽게 되며 유미는 살인자가 되어 종적을 감춰요. 지원이 애쓴 끝에 최지훈의 비리는 언론에 낱낱이 공개됐고, 유미는 한국이 아닌 외국의 낯선 시골마을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음을 알리며 드라마는 끝이 납니다.
수지의 원톱 스릴러로 거짓말로부터 시작된 비극적 운명의 서늘함을 담아낸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는 6부작으로 끝맺음을 하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행복은 항상 좀 애매하잖아? 근데 불행은 되게 확실하다?"는 현주의 말,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하지만 진실은 간단하고 거짓은 복잡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견디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항상 그랬어요. 난 마음 먹은 건 다 해요."라는 유미의 내레이션이 명대사로 머리 속에 남았음을 언급하고 넘어갈게요.
덧붙여 드라마 OST로 들려오던 BGM이 피아노 연주곡이었던지라 가사에 집중할 필요 없이 인물들의 심리에 포커스를 맞춰 시청할 수 있었던 점도 장점으로 보여졌어요. 경쾌한 것 같으면서도 묘한 불편함을 안겨주는 음악이 작품과 잘 어울리더라고요. 이주영 감각의 연출도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드라마 [안나]가 2022년 8월, 확장판을 공개한다고 하니 이 점도 잊지 말기로 해요. 원래 8부작으로 집필되었던 작품이 6부작으로 줄어든 거라고 하니, 이번 확장판을 통하여 숨겨진 이야기를 하루 빨리 만나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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