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은 체스와 함께 성장한 베스 하먼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주인공이 보육원에서 우연한 기회에 체스를 알게 된 후, 순식간에 빠져들어 뛰어난 재능을 토대로 실력을 갈고 닦아 세계 체스 챔피언으로 거듭나는 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어요.
특히, 수학과 교수였던 엄마의 두뇌를 물려받은 베스가 체스에 몰두함으로써 서서히 드러나던 존재감은 가히 압도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홀로 살아남은 어린 아이에게 체스는 단순한 게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베스의 인생은 체스와 다름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수업시간에 주어진 문제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멀뚱히 앉아있던 베스에게 선생님은 칠판지우개를 털어오라며 신부름을 시켰고, 이로 인하여 보육원 관리인 샤이벌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베스에게 체스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려준 장본인이자 잠재력을 알아보고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도록 도움을 준 스승이 바로 샤이벌이었는데요, 무뚝뚝함 너머에 감추어진 자상한 면모가 마지막화를 볼 때까지도 잊혀지지 않아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드라마의 타이틀로 이름 붙여진 '퀸스 갬빗(QUEEN'S GAMBIT)' 또한 체스 용어로써 다양한 종류로 이루어진 체스 오프닝 중의 하나를 의미한다고 해서 흥미로움을 자아냈습니다. 체스를 소재로 진행되는 작품인 만큼, 볼수록 체스를 직접 둬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보육원에서 매일 나눠주는 신경안정제를 잠들기 전에 삼키고 침대에 누우면, 천장에 체스판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나며 베스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했습니다. 아홉 살 때부터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져든 베스는 입양 후 양어머니에게 술을 배웠고, 알마의 죽음 이후로는 알콜 중독까지 더해지며 위태한 체스 선수로의 삶을 이어나갔습니다.
결국 다시 혼자가 되어버린 베스는 고독함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곁에 자리잡은 약물과 술에 빠져들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드라마 [퀸스 갬빗]은 베스가 약물 중독과 알콜 중독을 극복해 내며 진정한 체스 챔피언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선보이는 작품이므로, 이 점을 기억하며 봐주면 더 좋아요.
덧붙여, 체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어렵지 않게 작품을 보며 이해하는 게 가능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드라마를 시청하고 난 뒤에 체스를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는 점에서 유익함을 경험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그랬거든요.
다만, 남성들로 가득한 체스판에 젊은 여성이 입성해 실력을 뽐냄에 따라 지금껏 보편화되어 온 편견을 깨뜨린 중심내용은 감탄을 불러 일으켰으나 체스가 아닌 베스의 일상을 들여다 보게 해주는 순간들은 익숙하게 봐온 진부함으로 채워져 있어 아쉬웠습니다. 체스로 인해 알게 된 남성들과의 관계는 파운스를 제외하고는 섹슈얼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게 굉장히 뻔하더라고요. 여기에 더해 속옷만 걸친 채로 술과 마약에 빠져 춤을 추는 순간도 노골적인 보여주기식 장면이라 고개를 내젓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리 러브라인에 치중하지 않고 체스를 향하여 전진하는 주인공의 서사에 초점이 맞춰져 다행스러웠답니다.
양아버지가 집을 떠난 이후에 양어머니 알마와 체스대회에 출전하며 돈독한 유대감을 형성해 나갔던 베스의 시간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입양된 초기에는 술과 약에 빠져 슬픔에 젖은 알마로 인해 베스가 불행해지지 않을까 염려가 됐는데, 서로가 의지하며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게 돼 기뻤어요.
이에 앞서, 베스가 처음으로 출전한 체스대회에서 첫 생리가 터져나와서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베스에게 다가 온 소녀가 탐폰을 건네주는 찰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체스밖에 몰랐던 베스가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곁에 존재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더불어 보육원 친구인 졸린의 등장과 존재감도 감명깊었습니다. 베스가 어린 시절에 만난 좋은 사람들에는 샤이벌 외에도 졸린이 포함될 수 밖에 없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이후에도 여전히 친구를 위한 조언과 함께 지원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눈여겨 볼만 했습니다. 로스쿨 가려고 모아둔 돈을 체스의 경기 참가비로 선뜻 내주는 모습도요.
"한때 난 네 전부였어. 그리고 한때 넌 내 전부였고. 우린 고아가 아니었어, 서로가 있었으니까."라는 졸린의 명대사도 그래서 더욱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시기적절하게 베스를 방문해 보육원의 추억을 떠올리게 도우면서 윌리엄 샤이벌과 작별인사를 할 수 있게 해준 졸린의 배려는 최고였습니다. 게다가 지하실에 샤이벌이 모아둔 베스의 기사와 관련 정보, 체스 토너먼트에 사용할 참가비를 빌려달란 편지까지 만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은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지요. 둘이 함께 찍은 유일한 흑백사진도 애틋함을 자아냈답니다.
마지막으로, 드라마 [퀸스 갬빗]의 일등 공신이자 타이틀 롤으로 멋진 활약을 선보인 엘리자베스 하먼 역의 안야 테일러 조이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매력적인 외모와 탁월한 열연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인물이기에 시즌2를 향한 기대감 역시 높여주었음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안야 테일러 조이를 영화 [엠마]를 통해 먼저 마나 본 적이 있어서, 그때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신한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왔음을 밝힙니다. 실화는 아니고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거라고 하던데, 기회가 되면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괜찮은 소설을 기막히게 찾아내서 드라마화하는 넷플릭스의 장점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이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시즌2 제작을 염두해 두고 있다고 하니, 바라는 점을 한 가지 끄적여 보고 넘어가기로 할게요. 새롭게 시작될 시즌에서는 베스와 쟁쟁한 대결을 펼칠 여성 선수들의 모습을 자주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건 이것 뿐이네요.
두 번이나 패배를 안겨줬던 소련의 체스 챔피언 보르고프에게서 승리를 거머쥔 베스가 올 화이트 컬러 의상을 착용한 채로 차에서 내려 거리를 걷다 할아버지들이 체스를 두는 곳에 자리를 잡고 승부를 겨루는 엔딩도 뜻깊었습니다. 체스를 사랑하는 베스에게 걸맞는 결말이었다고나 할까요?
체스를 통하여 지금껏 접하지 못한 새로운, 냉정한 승부의 세계를 확인하게 돼 즐거웠습니다. 안야 테일러 조이의 엘리자베스 하먼이 선보이는 [퀸스 갬빗]을 시청하게 돼 만족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즌2도 조금은 기대해 보려고 합니다.
'드라마 취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주인공, 율제병원 5인방 구구즈 뜻과 의미는? (0) | 2021.06.14 |
---|---|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 : 마케터의 치열한 직업 생존기 (0) | 2021.01.25 |
웹툰 원작 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 : 예상치 못했던 병맛 로맨틱 코미디 스릴러와의 만남 (0) | 2020.07.26 |
드라마 [더킹-영원의 군주] : 과도한 PPL이 아쉬움을 더한 평행세계 판타지 로맨스의 시간 (0) | 2020.06.20 |
드라마 [메모리스트] : 초능력 형사와 천재 프로파일러의 완벽한 합동수사 (0) | 2020.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