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미야베 미유키 장편소설 <오늘밤은 잠들 수 없어>를 읽었습니다. 작가가 집필한 최신작인 줄로만 알았는데, 초기작을 재출간함으로써 만나볼 수 있었던 책임을 알게 돼 감회가 새로웠어요. 참고로 일본에선 1992년에 초판되었고, 국내에서는 2010년에 발매된 뒤 개정판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서 흥미로웠답니다.
이와 함께 남중생 오가타 마사오와 시마자키 도시히코가 콤비를 이루며 선사하는 스토리 전개가 중심을 이루는 것이 특징인 소년 탐정물을 접하는 일이 가능해 신선했어요. 그리하여 단짝 시마자키 시리즈로 불리며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소설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기대가 되기에 이르렀답니다.
소설 <오늘밤은 잠들 수 없어>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축구부원으로 활동 중인 중학교 1학년 오가타 마사오의 어머니에게 어느 날, 5억엔이라는 거금이 유증되면서 비롯되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어요. 20대 시절 어머니 사토코가 머물렀던 연립주택의 이웃이었던 사와무라 나오아키가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맬 때 도움을 준 것을 계기로 성공하면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데, 시간이 흘러 주식 거래를 통하여 큰 돈을 벌게 되자 정말로 이를 위한 유언장을 남김으로써 평범한 삶을 살아 온 오가타 가족에게 뜻밖의 일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언론과 더불어 주변 사람들의 관심으로 시끄러운 나날이 계속되는 와중에 부부 관계에도 위기가 닥쳐 아버지는 집을 나가버리고 말아요. 이로 인해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마사오는 절친 시마자키와 힘을 합쳐 사와무라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토코와 사와무라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 사람들이 늘어나며 부부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고야 마는데요, 유증을 받기에 앞서 마사오의 아버지가 말썽을 피운 전력이 상당해서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처지에 다다랐다고 봐도 무방해 보였습니다. 덕분에 이 작품의 내용은 가족과 인정의 문제를 다룬 추리소설로 부족함이 없었답니다.
뭐니뭐니 해도 책의 첫 페이지에 담긴 문장이 선사하는 메시지가 남달랐거든요. "인정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옛사람의 말에 괜한 인정을 베풀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존재하므로 냉정하게 뿌리치는 것도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 담임선생님과 곤란에 처한 사람에게 인정을 베풀어 도와주면 내가 어려울 때 누군가 힘을 보태주기 마련이므로, 남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인정과 도움을 아끼지 말라는 의미임을 피력한 교감선생님의 상반된 의견차가 사건이 진행될수록 색다른 의미로 다가와서 뜻깊었어요.
26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으로 빠르게 읽어 내려가기 어렵지 않았던 소설 <오늘밤은 잠들 수 없어>는 기상천외한 사건의 실체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촘촘한 개연성으로 연결되어 있기보다는 독자들을 놀라게 해줄 장치적 설정에만 유독 공을 들인 느낌이 들어서 조금 아쉬웠어요. 기존에 읽었던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작품에 비하여 탄탄한 스토리가 도드라졌던 건 아니라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었음을 밝혀 봅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스펙타클함에 초점을 맞춘 엔터테인먼트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나쁜 건 아닌데, 오락성에 무게가 실리다 보니까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이야기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제 기준에서는 그랬답니다. 그래도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 작품을 접할 수 있었기에 그 부분은 흡족함을 자아내고도 남았다지요.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고 해도 모든 작품이 좋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이걸로도 충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사오가 자신과 연관된 사건을 파헤치려 애쓰는 동안 시마자키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진상을 꿰뚫어 보는데, 이로 인해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둘의 케미가 눈여겨 볼만 했던 순간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단짝 시마자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꿈에도 생각하지 않아> 또한 읽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을 통해서 써내려가 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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