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다 마하의 소설 [총리의 남편]은 제목에 걸맞는 그대로의 내용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새 관찰일지를 써내려가던 조류학자 히요리의 아내 소마 린코가 42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 최초의 여성총리가 되며 벌어지는 사건사고가 눈여겨 볼만 했거든요. 무엇보다도 이와 관련된 스토리를 남편 히요리의 시선으로 접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답니다.
린코가 총리로 임명됨으로써 본인 또한 총리의 남편으로 거듭나게 된 히요리는 이때부터 조금 특별한 관찰일기를 쓰기로 결심합니다. 그리하여 조류학자의 이야기를 통해 총리 아내를 중심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정치 활극을 마주하게 해줘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여기에 더해 새와 인간의 특성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점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부부만의 오붓한 일상을 뒤로 한 채 경호원의 보호 아래 살게 된 린코와 히요리는 예전과 다른 삶을 영위해 나가기에 바빴는데요, 그로 인해 닥쳐오는 위기와 갈등의 순간을 극복해 나가며 정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던 린코와 아내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는 히요리의 모습이 감명깊었습니다. 이 와중에 퍼스트 젠틀맨의 역할에 충실하려 심혈을 기울이던 히요리의 고뇌도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어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온 뜻밖의 유혹에 흔들릴 때도 없지 않았으나 초식남이자 연하남의 본분을 다하며 외조에 힘쓰는 순간들이 보기 좋았답니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린코를 내세워 확인하게 해준 바람직한 정치인의 면모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와 함께 총리 스스로가 아닌 총리의 남편 시점으로 서사를 풀어나간다는 점이 재밌어서 페이지가 절로 넘어가더라고요. 총리의 속내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존재가 맞닥뜨리게 해준 관찰일기의 매력이 남달랐던 한 권이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무래도 조류학자로 새 관찰일지를 상세히 기록해 나갔던 경험이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론적으로 하라다 마하의 [총리의 남편]은 현실을 개탄함과 동시에 국민을 진정으로 위할 줄 아는 국회의원의 탄생을 간절히 기다리는 작가의 염원이 담겨 있는 판타지 소설이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일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마냥 판타지에 등장하는 캐릭터로만 그쳤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는 우리가 바라는 여성 정치인의 이상향을 눈 앞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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