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티는 꽤나 인상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작품이었습니다. 1회부터 3회까지는 19세 시청등급 판정을 받아 파격적인 격정 멜로의 절정을 보여주며 감춰져 있던 사랑의 민낯을 서서히 드러냈고, 그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미스터리와 심리 스릴러로 시청자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며 범인 추적에 박차를 가하도록 도왔으니까요.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JBC 보도국 뉴스나인 앵커 고혜란을 중심으로 강태욱, 케빈 리, 하명우 세 남자가 보여준 각기 다른 사랑법. 그리고 혜란이 케빈 리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리면서 보여준 이야기는 뛰어난 영상미와 음악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거듭나며 초반부터 명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혜란에게 명함이 되어주겠다 약속하며 결혼해 올바른 길을 걷던 국선 변호사이자 하나 뿐인 남편, 강태욱. 아내가 사건의 진범으로 몰렸을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녀의 변호를 맡아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준 모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남성의 표본으로 자리잡으며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어요.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스스로가 짜놓은 각본대로였다고 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아나운서 시험에 임하기 위해 아이를 지워버린 아내에 대한 분노는 케빈 리와의 관계를 알게 됨으로써 극대화되었고,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끌고 말았어요. 치밀한 분석과 영상 기법으로 선보인 부검 결과에 비해 사건의 진상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혜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범인으로 적합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다만, 마지막까지 비겁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오명을 씻기에는 더 이상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 아쉽습니다. 차라리, 명우가 죄를 덮어쓰고 자수했을 때 나서줬더라면 좋았을 법 했어요. 안개 자욱한 집 앞에서 마주한 강기준 형사와의 대립 이후,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향해 속도를 내던 태욱의 모습은 그렇게 아쉬운 결말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뉴스라인 앵커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혜란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이목을 사로잡았던 드라마 미스티는 그녀의 지휘 아래 권력으로부터 계속된 언론 탄압의 길을 극복하며 정의를 위해 한 걸음을 떼고 있었습니다. 혜란이 살아 온 삶이나 그녀가 행한 일들이 모두 올바른 것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들겠으나 전반적으로는 옳았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언론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 준 것이나 다름 없으니, 이러한 점에서 충분히 본받을만 하다고 여겨졌어요. 혜란과 장국장 두 사람이 조합이 선사한 팩트에 입각한 정의는 되새겨볼만 했고요.
태욱과 혜란의 사랑은 시작부터 어긋나 있었기에 균형을 맞추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걸지도 몰랐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보여주었던 둘의 관계가 그래서 더 애처롭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어요.
김남주와 지진희. 두 배우가 보여준 명연기는 단연 최고였고, 그래서 드라마가 빛날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김남주의 능숙한 아나운서 연기가 더해준 고혜란 캐릭터는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지진희가 보여준 강태욱은 겉과 속이 다른, 비겁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겠지만요. 사랑이라는 이유로 용서받을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드라마 미스티는 기본적으로 행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음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어두운 이면을 지닌 채 살아가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보여주며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으니 말이죠.
혜란과 태욱, 은주와 재영의 모습은 그런 이유로 같지만 달랐어요.
이 작품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 봤던 것은, 혜란을 통해 성장해 나가던 보도국 후배들의 모습이었어요. 만날 때마다 날을 세우던 선후배 관계를 벗어나 믿고 의지하는 멘토와 멘티가 된 혜란과 지원의 변화가 의미있었고 값졌습니다. 혜란 같은 선배가 한명이라도 존재했더라면 참 좋았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좋아하는 게 아니라 리스펙트, 존경하는 것. 오글거리는 게 아니라 마음 든든해지는 것. 혜란을 향한 기석의 진심을 지원이 알아채는 순간 그녀 역시 달라졌을 것이라고 봐요. 매 순간 옳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혜란이라는 이름 석자가 가져다 주는 위엄은 두 사람에게 자양분이 되어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잡았을 것임을 알기에.
이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항상 옳거나 그르지 않아요. 그렇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인물들이 안타깝게 여겨졌습니다. 진실을 올곧게 맞닥뜨리지 못하도록, 겹겹이 쌓인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만든 마지막회의 결말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혜란을 사랑했던 세 남자. 케빈 리(이재영)에게는 욕망이었고, 태욱에게는 집착이었으며, 명우에게는 유일신과 같은 존재가 혜란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일이므로 생각해 보면, 결국 미스티라는 제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찜찜함은 여전히 남아 있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혜란을 사랑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었던 남자, 하명우. 혜란의 잘못은 없다며, 주변 사람들이 오해해서 일을 크게 만든 거라며 끝까지 그녀를 두둔했던 유일한 사람. 어떻게 하면 이리도 맹목적으로 한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혜란 때문에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됨으로써 이루고픈 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내딛으면서도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진심이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와서 눈물이 났어요.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모두가 자기 인생을 산 것 뿐이라고,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며 작별인사를 하고 멀어지던 명우는 드라마 미스티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최고의 캐릭터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사랑하는 이의 곁에 머물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모든 걸 헌신하는 애달픈 사랑에 가슴이 아려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물론, 죄값은 치러야 할 테지만.
뮤지컬 배우에서 드라마 배우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임태경이 보여준 성인 명우의 연기 또한 빛났습니다.
그리고, 명우 아역으로 모습을 드러낸 서지훈 역시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다음에는 아역 말고 주연으로 만날 수 있기를. 굉장히 마음이 쓰일 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캐릭터를 두 배우가 잘 만들어줘서 인상깊었어요.
격정 멜로를 가장한 심리 스릴러, 그리고 미스터리가 혼재했던 드라마 미스티. 안타까운 비극으로 마무리가 됐지만 안개가 걷히지 않는 이상, 그것을 뚫고 나올 자신이 없는 이상은 행복 또한 거머쥘 수 없음을 알게 해줘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충실했던 작품이라고 여겨집니다. 다만, 그럼에도 제목에 끼워맞춘 결말이라는 느낌을 지우긴 힘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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