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협상]은 2018년에 개봉했고, 손예진과 현빈이 주인공으로 출연함에 따라 이목을 집중시킨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설 연휴에는 안방극장에서도 만나보는 일이 가능해져 이슈가 된 게 사실이지요. 현재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두 배우가 다시금 동반 출연하고 있어서 화제성이 더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덕분에, 저 역시도 영화관에서 놓쳤던 영화 [협상]을 이번 기회에 마주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못 보고 지나간 작품을 한 편씩 즐기며 명절 연휴를 만끽하는 재미도 상당하더라고요.
범죄 오락 영화를 표방하며 시작된 [협상]은, 경찰청 블랙리스트에 오른 국제 범죄조직의 무기 밀매업자 민태구가 태국에서 한국 경찰과 기자를 납치한 후 채윤을 협상 대상으로 지목함에 따라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그에 앞서 열흘 전, 휴가 중이던 채윤이 현장에 긴급 투임됐음에도 불구하고 인질과 인질범이 모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던지라 하경위는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새로운 임무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참고로, 하채윤은 서울지방경찰청 위기협상팀 소속 경위로 활약 중이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인질극을 벌이는 와중에도 별다른 이유와 목적을 언급하지 않는 민태구로 인해 난감한 상황 속에서 채윤은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어떤 정보도 미리 전해받지 못했기에 당황스러움이 역력했어요. 그나마 한과장(장영남)이 나중에서야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알려줘서 사건의 내막을 아주 조금 알아차린 정도가 다였습니다.
결국 보다 못한 채윤이 자신의 팀원인 이다빈(이주영), 박민우(이학주), 같은 팀 선배이자 소속 조사관인 안혁수(김상호)와 의기투합해 정보를 수집해 나가며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수 밖에 없어 이 점이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뿐만 아니라 인질들의 생사 여부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민태구의 죽음을 바라던 고위직 간부들의 실리 추구 행태에는 고개를 내젓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민태구도 악인이지만, 고위직 간부들 역시도 그에 버금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하채윤으로 분한 배우 손예진의 연기가 인상적으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민태구의 말대로 하채윤은 가슴이 뜨거운 협상관임이 분명해 보였어요. 그리고 드디어, 자신이 주도권을 잡아 사건을 지휘해 나갈 때 마주하게 된 리더십도 최고였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완성도 높은 오피스물의 주인공으로 열연하는 손예진을 간절히 보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죠.
다만, 협상관의 자질을 제대로 갖춘 캐릭터였다고 말하기에는 힘들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유학파 출신으로 뛰어난 협상전문가임을 피력하고는 있었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진 두 건의 협상은 성공이 아닌 실패에 가까웠기 때문에 실력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이것은 단순히 채윤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게 맞아요. 채윤이 협상을 이어가려고 할 때마다 같은 편임에도 훼방을 놓는 사람들이 많아서 결렬된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성공적으로 협상을 거둔 사건을 먼저 보여줬어야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의 임팩트가 여러모로 약해서 확 와닿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단점이기도 했으니까 말이죠.
그 와중에 채윤의 팀원인 민우가 기기를 통하여 민태구의 감정이 흔들리는 찰나를 캐치해내는 장면은 꽤나 신기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차라리, 서울지방경찰청 위기협상팀을 중심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이야기를 보여줬더라면 훨씬 더 흥미진진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음은 물론입니다. 박민우, 이다빈, 안혁수, 하채윤. 네 사람이 힘을 합쳐 이끌어 낸 성공적인 협상이 오히려 더 흥미진진한 결과를 이끌어 냈을 거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현빈은 영화 [협상]의 민태구 역할로 데뷔 이래 최초로 악역을 맡은 거라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그래서 더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마냥 악한 인간은 또 아니었던 것 같아서 이러한 인질극을 벌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안타깝게 다가왔답니다.
다만, 채윤의 쓰리 사이즈에 대한 질문은 대본상 에러였다고 여겨집니다. 범죄 오락 영화에서 곁들여야 할 오락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거라면, 고리타분하다는 이야기 밖에 해줄 말이 없네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캐스팅된 만큼 영화가 천천히 베일을 벗어나감에 따라 긴장감을 갖고 지켜보려 노력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몰입감을 떨어뜨려서 기대했던 스릴러의 재미는 만나볼 수 없었음을 밝힙니다. 배우들은 훌륭했으나 그것이 전부라서 많이 아쉬웠어요.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범죄 오락물이 아니라 전형적인 신파 스릴러와 다를 바 없었다는 점, 영화의 엔딩마저 찝찝함을 남기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가 돼서 허무함 그 자체였던 영화 [협상]이었습니다. 극장에서 관람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면 말 다한 거죠......왜 끝으로 갈수록 신파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걸까요......
그래도, 하채윤 경위의 제복 입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이 점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중단발 헤어 스타일도 냉철한 협상관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져서 보는 재미가 상당했어요. 최고의 협상관으로 발돋움하며 냉철함을 유지하기 위한 시간은 좀 더 필요해 보였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익숙한 캐릭터와 구별되는 차이점이 존재해서 보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씁쓸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담배를 달라고 내민 손가락에 홍삼을 쥐어주던 혁수의 다정함도 눈여겨 볼만 했습니다. 위급했던 상황이 한창일 땐 본인이 먼저 담배를 건네줬으면서 말이지요.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가 되고팠으나 예기치 않은 결말로 두 번은 보고 싶지 않은 실패작이 되어버린 영화 [협상]이었습니다. 배우들이 아무리 잘해도, 스토리가 별로면 재관람은 아무래도 무리인 거지요.
안방 1열에서 볼 수 있어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가능했던 영화로 기억하게 돼 슬프지만, 이렇게라도 만나게 돼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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