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증강현실(AR) 게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미스터리 판타지물로, 흥미로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경험하도록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투자회사 제이원홀딩스 대표 유진우가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정세주가 제작한 게임에 빠져들면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 중심인데요,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소재를 드라마에 접목해 스토리 전개를 이어나갔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 했답니다.
최종화까지 모두 시청하고 나니,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유진우의 정세주 구하기' 혹은 '투자회사 대표의 게임 개발자 구하기'로 요약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현실과 게임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이 연이어 발발함으로 인해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사고가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증강현실에 깊이 빠져들수록 게임에서의 부상과 죽음이 실제가 되어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이 판타지물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던져놓은 수많은 떡밥을 회수할 해결책이 존재할지가 관건이었기 때문이죠.
저는 사실, 엔딩 자체는 나쁜 편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반전이 너무 허무해서 이로 인한 실망감을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확인하게 돼 씁쓸했습니다. 장면 곳곳에서 불쾌감을 건네는 부분도 좀 있었고 말이죠.
그치만, 증강현실(AR) 게임의 구현 만큼은 생생하게 잘 완성시킨 것 같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스페인 그라나다만의 정취와 역사를 포함해 알함브라 궁전에 새겨진 파티마의 손 등을 게임의 스토리 라인에 맞춰 재구성해낸 점 또한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와 함께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게임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현실의 복잡한 상황이 더해져 만들어내는 전개가 충격적이라서 마음 편히 보기는 좀 힘들었습니다. 때때로 게임보다 현실이 더 게임 같아서 슬프기도 했어요.
2번의 이혼, 절친 차형석과 첫번째 아내 수진의 결혼에 게임으로 인한 비극적 숙명에 빠져든 진우의 삶은 혼돈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현빈이 연기한 유진우는 정말 돈만 많을 뿐이지, 인생만 놓고 보면 빈 껍데기와 다를 바 없어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이 작품은 사실, 현빈이 맡은 유진우의 원맨쇼였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현빈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던 드라마였어요. 마지막회만 제외한다면요. 현빈과 박신혜를 주연으로 내세웠지만 둘의 로맨스는 아무래도 뜬금없이 흘러가는 부분이 많아서 와닿진 않았어요.
박신혜가 열연한 정희주의 비중이 훨씬 더 많긴 했지만, 임팩트가 강했던 것은 역시 엠마였기에 이 얘기를 하지 않고는 넘어가진 못할 것 같네요. 현실에선 세주의 누나, 게임에선 NPC로 엄청난 기능을 보유한 캐릭터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었거든요. 평화유지 기능은 그저 거들 뿐, 결말에 다다라 접하게 된 진짜 기능이 빛을 발하게 됨에 따라 그제서야 엠마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돼 흥미진진했습니다.
반면에 제가 느낀 희주의 역할은 세주의 누나, 진우의 로맨스 상대라는 분위기가 강했어서 좀 아쉬웠어요. 이로 인해 엠마가 보여준 반전 매력이 더 와닿았던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작품 덕택에 기타 연주와 함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흘러나올 때마다 소름이 돋게 된 건 저 뿐만이 아닐 거라고 확신합니다. 하하!
지금부터의 이야기에는 매우 강력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으니, 드라마를 안 보신 분들이라면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증강현실 게임 속 미스터리 판타지물의 흥미로움은 얘기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 아쉬움을 털어놓을 차례거든요. 이것을 말하기 위해선 스포가 필수이니 나중에라도 이 작품을 시청할 분들이라면, 눈을 감아주세요.
가장 아쉬웠고 허무했던 게 뭐냐면, 바로 반전이었어요. 세주가 만든 게임은 스마트 렌즈를 통해 하는 거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렌즈를 빼도 현실이 아닌 게임이 이어지기 시작했거든요? 근데 이게 버그 때문이라는 거예요. 게다가 이 버그가 유진우를 포함해 그가 끌어들인 인물들이었다고......
이 반전을 보면서 제가 깨달은 점이 있는데, 인간이 바로 이 세상의 버그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을 보니 작가가 버그,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본 내가 버그, 라는 다양한 명문장이 쏟아져 나와서 웃고 말았는데 조금은 공감이 되긴 하더라고요. 작가도, 나도, 우리 모두도 인간이니까 버그 맞는 거죠.
조금 더 깊이 있는 결말이 나길 바랐는데 너무나도 단순하고 명쾌한(?) 해답에 동공지진을 불러 일으켰던 이야기를 만나게 돼 공허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서비서 어떡할 거냐고요ㅠㅠ 그 와중에 차교수와의 동맹은 신박했다고 생각해요.
아 그리고, 제가 불쾌했던 최고의 장면을 꼽아보자면요. 차병준 교수가 며느리 수진에게 했던 말, 어울리지도 않는 자리에서 우아한 척 한다면서 내뱉은 두 글자의 단어였어요. 자신의 아들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며느리에게 할 말이었나 싶었고, 작가가 이 대사를 선택한 것에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수진이 시아버지의 돈을 한 푼도 물려받지 않고, 장학재단을 설립해서 다행스러웠답니다.
그래도, 진우에게 선호가 있어 얼마나 안심이 됐는지 몰라요. 이제는 더 이상 진우, 선호, 형석이 함께 할 수 없게 됐지만 여전히 진우를 걱정하며 그를 기다리던 박선호. 그의 모습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위안을 전해줬다는 점을 밝힙니다.
진우 대신 대표를 맡아 회사를 책임져 오다가 그만두겠다며 이유를 말하는데, "외로워서요."라고......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어서 느껴지는 외로움이 아니라 함께 했던 이들의 부재로 인한 고독과 쓸쓸함이 한 마디에 오롯이 담겨졌음을 알게 돼 마음이 짠했답니다.
박선호를 멋지게 보여준 이승준 배우의 연기도 최고! 드라마 속 저의 최애캐로 인정합니다. 최애캐가 게임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이라 좋았네요.
유진우의 정세주 구하기는 성공적이었으니, 이제 세주가 진우를 구해내면 되는 거겠죠? 자신이 만든 게임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 나감으로써 제대로 된 증강현실 게임을 개발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세주가 말한 게임 용어 중에서 인던(인스턴트 던전)은, 특정 유저만 사용하는 차단된 독립 공간이라고 하던데 요 인던의 드라마적 쓰임도 재밌었습니다.
엑소 찬열, 이 친구도 연기 잘하네요. 하지만 게임은 제대로 만들어 판매하기를 바랍니다......한우물만 파서 성공한 케이스, 하지만 이로 인해 인생의 쓴맛까지 제대로 본 케이스. 정세주가 유진우의 구세주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름도 비슷하네요. 작가의 의도가 담긴 거라면, 탁월한 작명이었다고 생각해요.
진우가 게임을 하면 직원들이 협력해 새로운 아이템과 무기를 제작해 나가는 점도 감명깊었어요. 세주에 이어 게임의 마스터가 된 진우는 죽지 않았을 테고, 희주와 분명히 만나게 되겠죠. 열린 결말이지만 비극적이진 않고 희망이 보여서 드라마틱하게 마무리가 됐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게임의 근본적인 문제와 개선책이 제시되지 않았고 반전을 보여주고 풀어나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단순해서 아쉬웠습니다. 기대하며 봤는데,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약하네요. 증강현실 게임의 위험성을 짚어주는 건 좋았지만 이 드라마의 치명적인 버그는 제자리를 맴돌 뿐이니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그래도, 중간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보고 관람평을 끄적일 수 있었으니 저는 만족스럽습니다. 근데 요즘 드라마 결말 트렌드가 남자 주인공 얼굴 안 보여주고, 실루엣만 확인하게 해주는 건가 싶네요. 여우각시별도 그러더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물론, 앞모습과 뒷모습이란 차이가 있지만 참 헛웃음이 나고 그렇습니다.
또 한 가지 궁금한 건, tvN에 스페인 지분 있나요? 꽃보다 할배 스페인편, 윤식당2,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이어 현재 방영 중인 스페인 하숙까지 전부 스페인이라 괜히 호기심이 동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 방문하게 되면, 이제는 이 드라마 생각이 날 것만은 확실해 보여요.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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