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되는 내내 높은 시청률로 관심을 집중시켰던 드라마 [아는 와이프]는, 이로 인하여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작품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현실에 지쳐가던 차주혁이 과거로 돌아갈 기회를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if 로맨스는 자신 뿐만 아니라 아내 서우진의 삶까지 바꿔놓으며 나름대로 흥미로운 전개를 이어갔지만 결국에는 누구나 다 아는 뻔한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면서 아쉬움과 씁쓸함을 더했을 뿐이었어요.
2006년에 발행된 500원짜리 동전을 통해 실현되던 새로운 인생은 주혁의 의지를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찾아나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마냥 그렇지도 않았답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사랑의 운명은 본인 곁에 존재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 그나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긴 했지만, 이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존재해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할 때가 없지 않았어요.
주혁은 은행에서 일에 치여 바쁜 일상을 보내다 집에 돌아왔을 때 잠시나마 숨 돌릴 틈을 필요로 했고, 우진은 두 아이의 육아와 맞벌이도 모자라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엄마로 인해 심란한 마음을 남편에게 털어놓을 시간을 원했지만 언제나 타이밍은 어긋나기 일쑤였지요.
그러다가 주혁이 새로 구입한 게임기를 발견하고 분노한 우진이 이것을 물에 빠뜨리면서 갈등이 극에 달했고, 때마침 찾아온 우연한 기회가 둘이 남남이었던 2006년으로의 시간여행을 허락하면서 if 로맨스의 서막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우진과 함께 했던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았던 주혁의 바람대로 그는 예전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됨에 따라 첫사랑 혜원과 결혼해 부유하고도 행복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게 돼요. 그러나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우진과의 만남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주혁이 일하는 은행의 수신계 직원으로 발탁된 우진은 차대리의 아내였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으로 곁을 맴돌았기에 혼란스러운 마음이 솟아나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드라마 [아는 와이프]는 둘의 운명을 암시하기 위한 나름의 복선을 깔아두며 영리함을 과시합니다. 우진의 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그녀를 미소짓게 만드는 남자의 정체가 주혁임을 넌지시, 아니 어쩌면 대놓고 드러내는 장치를 설정해 빼도 박도 못할 결말을 내비치게 된 거죠!
제목에서부터 도드라지는 엔딩을 예감하긴 했지만 이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에 억지스러움이 덜했다면 적어도 눈살을 찌푸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예상을 빗나감으로써 공감대 형성에는 실패하고야 말았습니다. 둘의 사랑만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림으로써 주변 인물들의 불행이 파도처럼 부서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것 또한 2006년 500원짜리 동전의 출현으로 현실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으니 이거야말로 완벽한 판타지의 구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주혁의 아내가 아닌 위풍당당한 커리어우먼 서우진이 너무나도 멋졌기에 주혁과의 사랑이 다시금 같은 상황을 야기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지만, 본인이 좋다고 하니 제삼자는 빠져주는 것이 맞겠죠?
둘의 사랑을 위해 희생된 인물은 바로, 혜원이었습니다. 지금껏 부족함 없이 살아왔기에 본인이 원하는대로 결혼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었지만 이것이 주혁과의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으로 부상하며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이끌었어요. 음식을 직접 요리하는 대신 구입해 데워먹고, 시부모님과의 만남을 꺼리는 악처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둘의 이혼에 정당성을 부여해 나가게 된 거예요.
이유는 각기 달랐지만 2006년으로 시간을 되돌리기 전까지 악처의 길을 걸었던 우진을 대신해 이제는 혜원이 바통을 이어 받은 셈이라 주혁의 입장에선 여전히 고단한 부부생활이 계속되고도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차라리 그녀들이 주혁과 엮이지 않았더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에 이르렀어요. 주혁의 판타지를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 아내들의 삶이 때때로 안타까움을 자아냈으니 말이죠.
부부로 맺어진 남녀의 인생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인연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해주려는 취지로 제작된 드라마였다고 생각되나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을 바꾸는데 온 힘을 쏟는 주인공의 모습에 실망하는 순간들이 부지기수였던지라 역시나 공감은 잘 안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혜원과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진과 종후의 관계를 질투하며 반대하던 주혁의 모습도 찌질함의 극치였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왜 항상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걸까요? 매번 잃은 채로 끝이 나는 현실과 달리, 주혁만은 예외로 판명이 나서 이 점도 시기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따져봤을 때, 드라마 [아는 와이프]는 주혁과 우진의 로맨스보다 다른 인물들의 관계가 훨씬 더 와닿았던 작품이기도 했어요. 단순한 직장 동료를 뛰어넘는 종후와 우진의 브로맨스, 주은과 우진의 워맨스, 장팀장과 변팀장의 사랑과 우정 사이가 특히 그랬답니다.
그래도 이 드라마 [아는 와이프]가 재밌었던 건, 주혁만이 아닌 우진 역시도 500원짜리 동전을 통해 과거로 넘어왔다는 점이었어요. 모든 사실을 주혁이 털어놓은 이후에 함께 떠나 온 2006년의 시간으로 인해 달라진 이야기가 의미심장했습니다.
둘은 또다시 사랑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지만 독박육아가 아닌 공동육아로 인해 전쟁 같은 일상을 치르지 않아도 됐어요. 여전히 같은 은행에서 일하는 동안, 우진이 먼저 팀장으로 승진했고 주혁 역시도 만년 대리를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답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둘이 힘을 합쳐 헤쳐나가는 모습이 지혜로워 보였음은 물론이고요. 이전의 실수를 되돌리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눈에 들어와 흥미롭기까지 했다죠.
다만, 이로 인하여 다른 이들의 삶까지 계속해서 변화를 거쳐야 했던 점은 안타까웠습니다. 그중에서도 두근거리는 썸을 연애로 발전시켜 나가던 환과 향숙의 모습을 자주 만나지 못한 점은 아쉬웠어요. 우진과 주혁으로 인해 끊임없이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하지만 거듭되는 시간여행에도 불구하고 둘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니기에, 진정한 사랑의 운명을 타고난 두 사람이 아니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드라마 [아는 와이프] 최종회, 16화의 부제는 '아는 해피엔딩'이었는데 예상외로 극적인 결말이 타결됐습니다. 우진이 남편의 승진 기념 선물로 최신형 게임기를 선물하면서 주혁이 과거의 기억마저 깨끗하게 잊게 될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당연히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어요. 우진의 엄마는 우진보다 더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가며 부부의 데이트를 위해 아이를 돌봐주는 것이 가능한 인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이전의 삶이 완벽하게 사라짐으로써 놀랍도록 안정적인 가정이 창조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평범한 행복을 찾아가는 가족의 인생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실로 다행스러웠지만, 과거의 사건들이 완벽하게 없었던 일이 된 것은 좀 의아하게 여겨졌어요. 건강과 부에 초점을 맞춘 해피엔딩이 남긴 메시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였어요. 단순히 아는 해피엔딩으로만 여겨지진 않는 이유가 여기에 존재했습니다.
남편 혼자만의 비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와이프로 인해 함께 공유하게 된 이야기가 많아진 것은 부부에게 있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자체는 해피엔딩이었지만, 막상 끝까지 보고 나니 기분이 온전히 행복하지만은 않았어요. 찜찜함이 마음 속에 남게 된 것이 흠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며,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으니 현재에 충실하며 곁에 있는 이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후회없이 살아갈 것을 전해주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라고 여겨야 될 듯 합니다. 배우들의 열연이 훌륭했지만, 그래서 더 씁쓸함이 밀려왔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시청하는 동안 드라마 [아는 와이프]는 과연 누구를 위한 판타지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머리 속에 가득 차올랐어요. 장르성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판타지물이었던 데다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라 뭐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보여집니다.
자신의 이름 안에서 다양하게 규정된 역할 외에 남편과 아내라는 본분을 갖고 살아가는 부부들이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드라마를 통해 의견을 나누며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하기를 원했던 작가를 포함한 제작진의 판타지가 고스란히 펼쳐졌던 작품이었음을, 이것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뭐, 이거면 된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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