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프]는 병원을 중심으로 대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기존에 봐왔던 의학드라마가 아닌 메디컬 정치 스릴러를 표방함으로써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남달랐으므로, 꽤나 놀랍지 않을 수 없었어요.
특히, '비밀의 숲'을 집필한 이수연 작가와 이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됨으로써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직접 시청하고 나니 확실히, 작가의 필력과 배우들의 열연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어 매력적이었습니다. 물론, 새로이 합류한 배우들 또한 마찬가지고요.
상국대학병원을 놓고 충돌하던 의사와 기업인의 갈등이 야기시키는 위험천만한 상황들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게 어쩌면 그리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순간들이 꽤 많았는데요,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의 사명감 속에 감춰진 욕망과 이익추구만을 위해 달려나가던 기업인이 병원에서 맞닥뜨리게 된 다양한 사건을 통해 변화함에 따라 보여지는 양면성이 눈에 띄어 흥미로운 지점이 많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사실, 드라마가 이보훈 원장의 죽음으로 시작돼서 비숲을 잇는 미스터리 의학 스릴러가 탄생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서 살짝 김이 새는 느낌이 없지 않았어요. 게다가 이와 관련된 진실이 명확하게 드러난 건 아니라서 이로 인한 아쉬움도 경험해야만 했고요.
그래도 드라마 [라이프]가 메디컬 정치 스릴러라는 장르와 찰떡궁합을 보여주었다는 점 만큼은 인정하는 바입니다. 상국대학병원 총괄사장으로 부임해 온 구승효와 이곳에 소속된 의사들의 대립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속내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죠.
병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어마어마한 정치적 상황들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이수연 작가의 필력은 대단했고, 캐릭터를 표현하는 배우들의 열연도 제대로였기에 뛰어난 몰입감을 확인하게 돼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카메라 앵글도 꽤 마음에 들었어요.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어떻게 찍어야할지를 잘 알고 장면을 표출하는 것이 시선을 사로잡았답니다.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의 손과 그들이 머무르는 병원의 흥망성쇄를 거머쥔 구승효의 손에 자주 포커스를 맞춰 보여주는 점도 매력적이었고 말이지요.
구승효에 맞서는 인물로는 의사 예진우가 고군분투를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역할이나 위치 자체가 애매모호한 감이 없지 않아서 구사장에 비해 존재감이 덜했다는 게 저의 솔직한 감상평입니다.
하나 뿐인 동생 선우를 향한 애절함이 만들어낸 존재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들까지 겹쳐져서 여러모로 복잡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뿐만 아니라 진우를 드러내는 방식보다는 오히려 다리가 불편한 선우를 그려내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기에 여기에 더 눈길이 가게 됐습니다. 신체적 아픔을 가진 동생과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형으로 인한 시간의 흐름이 두 형제를 향한 시선을 새로이 맞닥뜨리게 만든 순간도 없지 않았답니다.
상국대학병원 의사 중에서 가장 깨어있던 인물은 소아과의 이노을 선생이 아니었나 싶어요.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집단에 돌을 던져줄 사람, 고인물에 필요한 사람으로 구사장을 지목하던 선견지명이 남달랐던 의사.
드라마 [라이프]에선 구승효와 이노을의 은근한 러브라인 또한 만날 수 있었는데, 열린 결말과 닫힌 결말 사이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엔딩으로 마무리돼 미소를 짓게 되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드라마 [라이프]를 이끌어나간 일등공신으로는 배우 조승우를 꼽는 것이 당연하겠습니다. 눈빛, 표정, 몸의 움직임까지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된 것이 없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압도감이 대단했어요. 역시 조승우는 조승우였다고나 할까요?
화정그룹 장학금 1기 수혜자로 졸업 후 입사해 일하다 결국은 이 그룹이 매입한 상국대병원 총괄사장까지 역임하게 된 어마어마한 거물, 구승효. 철두철미한 성격으로 상국대병원 또한 화정그룹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데 기업인으로의 영업이익 추구에 박차를 가하던 그를 고민하게 만드는 윤리적 고민과 문제가 끼어들게 됨에 따라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에 따른 선택 또한 마찬가지였고요.
냉철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자신의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면모가 두드러지던 구승효였습니다. 강팀장과 운전기사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좋았고, 유기견을 위한 봉사활동에서도 성심과 성의를 다하는 찰나에서 진심이 느껴져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데려 온 강아지에게 저녁이라는 이름을 지어줄 땐 정말 빵 터졌다니까요.
상국대병원 의사들과 대치하다가 화정그룹에서 내몰려 안타까운 결말을 목도하게 됐지만, 구승효 입장에서는 그리 나쁜 상황도 아니었기에 그의 미래는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습니다. 일 잘하던 구승효가 어디 갈 리 없을테니까요. 해고된 시점에서도 상국대병원 의사들에게 "기본이 변질되는 걸 얼마나 저지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미있는 질문을 던진 것이 뇌리에 쏙 박히기도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5년 후의 미래엔 의료기관이 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닌 가진 자들의 건강 유지시켜주는 곳이 될 거다"라는 예언과도 같은 말을 남긴 것이 의미심장하게 비춰져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회까지 지켜보긴 했지만, 드라마 [라이프]는 결코 만만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의학 정치물이라는 색다른 장르물이 건네는 메시지가 대단했기에 이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곱씹어 볼만하다고 여겨집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끝내 실천에 이르게 될 사람으로 지목된 예진우의 행보는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믿어도 될 거라고 확신해 봅니다.
굉장히 많은 내용을 16회 안에서 함축적으로 보여주려고 애쓰다 보니, 산만함이 생겨서 아무래도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가 없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까웠던 드라마 [라이프]였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장르물을 향한 문을 열게 해주었으니 이러한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가치있는 작품이었다고는 보여져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어려운 드라마로 남게 될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 기업인은 물론이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해서 걸어나가야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자 지금까지 제대로 접해 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파헤친 드라마라는 점에서 가끔씩은 생각이 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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