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0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지브리 애니메이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바로 오늘, 개봉 당일에 영화관을 찾아 관람하고 돌아왔습니다. 요시노 겐자부로가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판타지로 재탄생된 이야기는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어요.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화재가 발생함으로 인하여 엄마를 잃은 열한 살 소년 마히토는 슬픔에 잠겨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요. 그러다 아빠를 따라서 도쿄를 떠나 엄마의 고향집이 있는 시골에 내려가 생활하게 되는데, 마히토 주변을 맴돌던 정체불명의 왜가리로 말미암아 뜻밖의 사건에 휘말립니다.
저택에서 일하는 일곱 할멈으로부터 왜가리가 머무르는 집 앞에 위치한 오래된 탑과 관련된 얘기를 전해 들은 마히토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 새엄마 나츠코를 찾다가 탑으로 들어간 마히토가 결국 왜가리의 안내를 통해 이세계로 연결시켜주는 통로를 지나 새로운 공간을 마주하며 벌어지는 내용이 애니메이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중심을 이루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 지금부터 이야기할 내용에는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
마히토는 엄마의 죽음 이후로 쉽사리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방황했어요. 특히, 새로운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하고 다투기 일쑤였던 것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여기에 더해 마히토 스스로 얼굴에 상처를 내며 마음 속에 타오르는 분노를 삭히려 애쓰는 찰나가 안쓰럽기 그지 없었답니다.
새엄마 나츠코는 친엄마 히사코의 동생이자 마히토의 이모로, 뱃 속에 이미 아빠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영화 초반에 나츠코를 보자마자 마히토가 닮았다는 말을 속으로 토해내는 장면이 그려져서 그냥 얼굴이 닮은 낯선 인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서 솔직히 좀 놀랐어요.
마히토와 나츠코는 그냥저냥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였으나 실제로는 서먹한 관계 그 자체로 서로를 달가워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이해가 갔어요.
나츠코와 일곱 할멈은 오래된 탑의 기묘한 힘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지만, 마히토에게 알려줄 리 만무했습니다. 그 와중에 나츠코의 실종 후 마히토와 같이 왜가리를 따라 나선 키리코 할머니의 존재감도 대단했음을 미리 밝혀 봅니다. 왼쪽 스틸컷 속 선두에 자리잡은 나츠코에 가려 열굴이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 인물이 바로 현실의 키리코예요. 그리고 오른쪽 스틸컷에서 두건을 착용한 사람은 이세계의 키리코랍니다.
이세계에서 만난 키리코는 저택에서 일하던 할머니가 아닌 배의 선장 겸 어부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과 행동력을 보유한 젊은이의 모습으로 위험에 빠진 마히토를 구출하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테이블 아래에 마히토를 재우면서 주변에 자신을 제외한 여섯 할멈 인형을 세워 지켜주던 한때도 따뜻함을 안겨주었다지요.
이와 함께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귀여움을 담당한 캐릭터, 와라와라들도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밤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비행을 시작한 와라와라는 마히토가 사는 세계에서 아기로 태어날 예정이라고 해서 이 부분도 기억에 남았어요. 죽은 자들로 넘실거리던 이세계와 산 자들로 가득한 현실을 이어주는 와라와라의 역할이 예상을 뛰어넘었음은 물론입니다.
마히토는 나츠코를 찾는 여정을 이어가는 동안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소녀 히미를 만납니다. 히미는 와라와라가 펠리컨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불을 사용해 막아주고 사라졌는데, 키리코와 헤어진 뒤 마히토와 재회해 동료가 되어 고군분투해 나가는 시간들이 보기 좋았어요.
참고로, 히미는 마히토의 친엄마이자 나츠코의 언니였습니다. 아기를 낳기 위해 탑에 위치한 산실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나츠코를 히미가 찾아냈고, 마히토는 그동안의 잘못을 깨닫곤 진심을 담아 나츠코를 엄마라고 부르며 현실로 함께 돌아가자고 외칩니다.
그러나 이세계의 빌런 앵무새 대장으로 인하여 위기가 찾아오고야 마는데, 이로 인하여 조우하게 된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오히려 마히토를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치죠. 하지만 마히토는 현실로 돌아가기를 바랐고, 뜻밖의 상황에 분노한 앵무새 대장의 행동으로 이세계가 붕괴되어가는 시점에서 마히토, 히미, 나츠코는 자신들이 사는 세계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히미는 마히토, 나츠코와 다른 시공간의 문을 열며 작별인사를 나눠요. 죽음이 예견되었음을 알지만, 마히토와 만나는 걸 포기할 수 없었던 히미의 결정은 감동을 자아내고도 남았습니다. 불을 쓸 줄 아는 재능을 타고났지만, 히미가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힘든 장소가 있기 때문임을 언급한 점도 잊지 못할 거예요.
결론적으로,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나츠코는 건강한 아이를 낳았고, 이로써 넷이 된 가족을 볼 수 있어 다행스러웠어요. 덧붙여 시골집에서 히사코가 마히토에게 남긴 책의 타이틀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점도 눈에 쏙 들어왔던 게 사실이에요.
뿐만 아니라 스토리 전개 안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들이 오버랩될 때가 없지 않아 반가웠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래된 탑에 마련된 통로를 보는 순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졌답니다.
신비로움이 전해져 오는 이세계 판타지를 현실과 접목시킴으로써 매력적인 장르의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돼 보는 재미가 상당했어요. 위의 스틸컷에서 마히토 옆에 앉은 캐릭터는 왜가리인데, 포스터와는 또다른 기괴함과 친밀감을 일깨워줘서 눈여겨 볼만 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속으로 악의를 품고 살아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위로를 건네기 위해 손을 내미는 서사 또한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다만,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펼쳐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내용은 마냥 공감을 불러 일으키진 않았음을 언급하고 넘어갑니다. 궁금증 해소를 위하여 한 번쯤 보기에 적당하면서도 약간은 난해했으며, 일말의 꽁기함을 남긴 작품이었습니다.
근데 엔딩곡으로 들려온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OST 수록곡인 '지구본'은 취향에 잘 들어맞아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특유의 절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와 작품에 잘 어울리는 가사가 완벽한 결말을 선사해줘서 만족스러웠어요.
원작 소설은 애니메이션과 차이점이 두드러진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기회가 된다면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애니는 이세계에서 악의를 버리고 선의를 지닌 채 현실로 돌아온 마히토의 성장이 인상깊게 다가온 작품이었습니다. 이거야말로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에 가깝지 않을까 싶더군요. 마지막으로, 마히토 아버지의 목소리로 기무라 타쿠야의 음성을 오랜만에 듣게 된 점도 흥미로웠어요.
탁월한 작화로부터 제작된 유려한 영상미와 엔딩곡이 마음에 들었던 지브리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후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신작이 개봉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다음에 또 새로운 작품으로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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