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생중계를 통해 2020년 6월 10일 수요일 오후 7시에 집에서, 뮤지컬 [귀환] 전막 실황을 관람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전사자 유해발굴을 소재로 제작된 육군본부 창작 뮤지컬 [귀환]은 2019년에 초연됐고, 올해 재연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개막이 무기한 연기됨에 따라 언제 무대에 오르게 될 지 알 수 없게 됐습니다. 안 그래도 수도권 공공부문 다중이용 시설의 운영 중단 권고가 내려져 개막이 조금 뒤로 미뤄졌던 상태였기에 안타까움이 더해졌답니다.
뮤지컬 [귀환]은 6·25전쟁 참전용사 승호가 퇴직 후 전사한 전우들의 유해를 찾아다니는 걸 소명으로 여기며 산을 헤매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승호의 손자인 현민은 문화인류학과에 턱걸이로 합격해 신입생의 생활을 만끽하면서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평범한 청년이었는데, 학과 동기 우주와 함께 유해발굴감식단에 특기병으로 지원해 합격하며 조금씩 변화를 겪어나가기 시작해요.
무대 위의 이야기는 승호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함에 따라 부잣집 아들 진구의 숙제를 해주고 용돈을 받아야만 했던 가난한 시절의 삶 또한 만나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 와중에 서울의 명문중학교에서 전학 온 해일은 당당하지 못한 일로 돈을 버는 승호를 도발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승호, 해일, 진구는 가까워집니다.
그렇게 우정을 쌓아가는 세 사람 사이에 해일의 쌍둥이 여동생 해성이 나타나자 승호는 어느덧 좋아하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한 뒤 진구가 혼례를 올리던 날 전쟁이 터짐에 따라 해일과 승호와 진구는 입대를 해야 했고, 해성은 학생 한 명이 학도병으로 입대하려다 어머니 손에 끌려가는 걸 확인하고 자신이 소년인 척 끼어들어 입대를 합니다. 이로써 관객들은 전쟁의 비극이 선사한 쓰라린 역사의 단면을 뮤지컬 [귀환]을 통해 새롭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날 시청한 뮤지컬 [귀환] 전막 실황 생중계는 전캐스트가 1막과 2막에 등장하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다만 생중계 당시에 아직 공연이 개막하기 전이었던 관계로 출연진들의 로딩이 조금 필요해 보이는 상태이긴 했음을 밝힙니다.
배우들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보자면, 뮤지컬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아이돌이 대거 출연해 시선을 사로잡은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군뮤인 데다가 실제로 군 생활 중인 배우들이 대부분인 점도 흥미로웠고 말이지요. 과거 승호 역의 윤지성은 소년미가 잘 어울리는 이미지와 목소리가 만족스러웠고, 도경수는 전쟁으로 인해 그림자가 드리워진 인물의 고뇌를 선보이는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해일 역의 이찬동은 엘리트의 정석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면, 이재균은 입대한 이후에 맞닥뜨린 상황이 가져다 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방황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해성 역의 양지원은 발랄한 학생, 김세정은 귀를 사로잡는 음색이 돋보였고, 이지혜는 단단한 가창력이 매력적이었어요. 진구 역의 김기수도 제 역할을 다해줘서 좋았고, 현재 승호 역의 이건명과 이정열은 말이 필요없을 만큼 완벽한 싱크로율을 경험하게 만들었습니다. 현민 역의 김민석(시우민)은 철부지 현민과 잘 어울렸고, 특히 춤출 때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더라고요. 이홍기는 노래 부를 때 역시나 두드러졌고, 다함께 열창할 때 귀에 꽂히는 목소리가 감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주는 사실, 비중이 너무 없어서 뭐라고 말하기가 참 애매한데 그래도 성열의 연기가 꽤 괜찮았어요. 그리고 김민석의 노래는 처음 들었는데 기대 이상이라 좋았고요. 장교 역의 김우혁과 키썸은 우주보다 더 나오는 분량이 적지만 그래도 존재감이 남달라서 눈여겨 볼만 했습니다.
* 이재균 *
출연진 중에서는 해성 역을 맡은 이재균 배우가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연기와 노래의 밸런스가 잘 맞아서 이로 인한 카리스마가 독보적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어요. 이날 이재균은 2막에서만 모습을 보였는데, 그래서 1막에서의 해성도 궁금해졌던 게 사실입니다.
공연을 직접 보기 전에는 아무래도 군뮤지컬의 특성상 많이 울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막상 관람을 하니 그건 또 아니었어요. 오히려, 생중계 시작 전과 인터미션 사이에 만나볼 수 있었던 오프닝 영상이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음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건명 배우가 내레이션을 맡아 제작된 영상에서는 6·25전쟁 참전용사였던 실존 인물들의 인터뷰가 펼쳐졌는데, 전쟁과 관련된 경험담은 물론이고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보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다만 초연부터 군뮤지컬로 호평이 자자했던 뮤지컬 [귀환]을 재연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만난 저의 감상평은 솔직히 말해서, 재미와 감동보단 아쉬움이 더해서 보완이 필요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공연은 유해발굴이 진행되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헤르만 헤세의 저서인 '데미안'을 토대로 구성된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이 중심을 이루었는데요, 그러한 이유로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난해함을 경험하게 해주는 작품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승호와 해일의 관계는 데미안 속 등장인물인 데미안과 싱클레어로 표현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를 위한 캐릭터의 개연성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로 인해 보는 내내 머리 속에 물음표를 띄우게 만들었답니다. 저는 오래 전에 이 책을 읽긴 했는데 내용이 쉽지 않아 훑어보기 식으로 그쳐서 주요인물들의 이름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더라고요.
두 사람이 독일어 과제를 함께 하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들고 다니며 대화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내용이 많았어요. 그나마 2막에서 해일이 부르는 넘버인 '유언'을 통하여 "나는 너에게 데미안이 아니었지만 너는 나에게 싱클레어였다고"라는 가사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지요.
작가는 '데미안'을 캐릭터 뿐만 아니라 스토리 전개 곳곳에, 그리고 넘버의 가사에 포진시키며 관객들로부터 흥미로움을 끌어내려 노력했으나 책의 내용이 희미해질대로 희미해진 저에게 있어 이러한 흐름은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승호화 해일의 관계성에 관련된 서사가 충분치 않다고 느낄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죠.
이와 함께, 가끔씩 장면과 장면 사이가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 씁쓸했어요. 현민과 우주가 문화인류학과에 입학했다는 게 시놉시스에 포함되었으니 이에 대한 설명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게끔 풀어줘야 했는데, 음악으로만 연결시키려고 했던 것 같아 고개를 갸우뚱거려야만 했습니다.
전하고픈 메시지는 상당했지만 제작진의 의도를 한 번의 관람만으로 파악하기에는 어려웠다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뮤지컬 [귀환]이 워낙 인기 있는 작품이라 티켓 한 장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인데 재관람은 더더욱 힘든 게 맞지요. 그러한 상황에서 재관람이 계속됨에 따라 이해가 가능한 극이라면 저는 아마도 과감히 포기했을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생중계로 볼 수 있었다는 게 다행스럽습니다. 1막은 산만했고 2막은 그나마 좀 괜찮았으나 그게 전부라서 좀 더 다듬어질 필요가 존재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곱씹게 만들었던 뮤지컬 [귀환]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해성의 서사는 꽤나 흥미롭긴 했어요.
허나 스토리보단 음악이 마음에 남았고 현재 승호의 '술래가 되면', 해성의 '태도', 해일의 '유언'이 베스트3였음을 이야기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내가 술래가 되면'은 술래잡기라는 놀이를 활용해 만든 넘버의 강점이 도드라져 귀에 꽂혔어요. "혹시나 길을 잃어서 잠든 채 숨어있다면/ 이제는 나타나줘/ 집에 가야지 밤 깊어가는데"라는 가사는 승호의 현재 상황과 겹쳐 보여서 슬픔이 밀려왔음은 물론입니다. 명곡인데,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들려와서 깜짝 놀랐던 곡이기도 해요.
이에 덧붙여 넘버의 난이도가 상당해 보여서 공연이 개막하게 되면, 출연진 모두 목관리를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장점보다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들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참혹함을 상기시킨 공연이었다는 점에서 다시는 이러한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꿈꾸던 청춘의 상실이 눈 앞에 펼쳐질 때는 마음이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유해발굴과 데미안으로 기억된 그날의 약속, 뮤지컬 [귀환] 전막 생중계에 대한 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화려한 캐스팅으로 다져진 출연진과 넘버의 강렬함에 비해 스토리 전개는 아쉬웠지만,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한 번쯤은 볼만한 공연임은 확실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황이 나아져서 하루 빨리 개막할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더불어 부디,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공연 속 넘버의 가사처럼 마지막 병사가 집으로 돌아가게 될 그날을 기다려 봅니다.
'베짱이는 노래한다 > 공연, 전시 한편 어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극 [플레이 위드 햄릿] : 무대 위 4명의 햄릿이 전하는 그들의 이야기 (0) | 2020.09.21 |
---|---|
뮤지컬 [팬레터] : 경성시대 문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탄생된 모던 팩션 (0) | 2020.09.06 |
국립무용단 [묵향] : 사군자를 주제로 펼쳐진 우아한 춤사위의 절정을 확인하다 (0) | 2020.04.15 |
국립창극단 [패왕별희] : 경극과 창극의 조화가 감탄을 불러 일으킨 작품 (0) | 2020.04.09 |
유니버설발레단 [발레 춘향] : 고전과 클래식의 만남, 차이코프스키 안에서 빛나던 이야기의 멋 (0) | 2020.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