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이 써낸 [일의 기쁨과 슬픔]은 직장인의 애환을 생생하게 담아낸 회사소설로써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회사에 몸담아 본 적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한 작품들로 한 권의 책이 구성된 점도 흥미로움을 자아냈답니다.
'잘 살겠습니다'는 결혼식을 겨우 3일 남겨둔 시점에서 3년 동안 교류가 오가지 않던 직장 동기 빛나 언니의 연락을 받고 청첩장을 건넬 약속을 잡아버린 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다소 독특한 빛나 언니의 캐릭터를 마주하며 겪는 다양한 감정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회사생활을 돌아보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10년의 시간이 흐른 이후에도, 지금처럼 둘 다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애처로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결혼 전 비밀스런 사내연애를 해왔던 입사동기 남자친구와 백오피스에서 치열하게 일한 결과 겨우 원하는 부서로 이동이 가능했던 자신과의 연봉 차이가 천만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을 때의 착잡한 기분이 머리 속에 되살아났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제 막 결혼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공통점이 존재했으므로, 빛나 언니 역시도 잘 살았으면 하는 나의 마음은 단순한 입사 동료가 아닌 여성 직장인으로의 연대감이 담긴 진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와중에 축의금에 대한 내용은 꽤나 현실적이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중고 거래 어플에서 지나치게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감으로써 의심을 받게 된 거북이알의 정체를 파헤치고자 만남을 시도한 안나의 여정을 따라가는 작품이었습니다. 알고보니 거북이알은 카드회사 공연기획팀 소속으로 근무하다가 회장의 미움을 사게 돼 다른 팀으로 이동한 것도 모자라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대신 받는 생활을 해 나가는 중이었어요.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자본주의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 현명한 삶을 유지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돼 눈여겨 볼만 했답니다.
그리고 안나가 재직 중인 스타트업 회사에서 개발한 앱의 이름은 우리동네 중고마켓을 줄인 우동마켓이었는데, 실존하는 어플리케이션인 당근마켓이 떠올라서 재밌었고요. 거북이알을 만나고 돌아와서 일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던 동료와 화해하고 난 뒤, 좋아하는 클래식 공연 예매를 위해 퇴근을 잠시 미루고 사무실에 남아 티켓 오픈 시간까지 덕질을 하며 바쁜 일상을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모습도 미소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바쁜 업무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짧은 단편 속에 매력적으로 녹여낸 에피소드라서, 읽고 나니 소설집의 표제작으로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붙여, 책표지의 그림도 이 단편의 문장들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으니 직접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더 얘기하고 넘어가자면,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는 분들이라면 더 깊이 공감이 가능한 단편이라고 확신합니다. 저 역시도 화장실에서 울었던 과거의 기억이 무심코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는 말씀!
이외에 지훈이 한때 회사 동료였던 지유가 현재 머무르는 후쿠오카로 떠난 여행에서 맞닥뜨린 기막힌 착각을 확인하게 해준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유튜브에 업로드한 자작곡으로 유명인이 됐으나 그로 인해 오히려 기회를 놓친 무명 뮤지션 장우의 시간을 그려낸 '다소 낮음', 이 두 작품은 남자 주인공이 등판한 것이 특징인 단편으로 남았습니다.
어렵게 내집마련에 성공한 신혼부부가 맞벌이 생활로 인해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며 벌어지는 일들이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를 넘어 개인의 삶에까지 연결되며 오묘한 미스터리적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인상적이었던 '도움의 손길', 제목만으로도 줄거리가 연상되는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어느날부터인가 포털사이트의 댓글 모니터링 업무를 맡은 주인공이 사는 집에 새벽이 찾아오면 초인종을 울리는 남자들의 정체가 직업과 연결고리를 가지며 경각심을 갖게 만든 '새벽의 방문자들', 다큐멘터리 피디 지망생인 주인공이 아일랜드 더블린으로의 워킹 홀리데이를 위해 경유지 탐페레 공항에서 만난 노인과의 훈훈한 얘기가 담긴 '탐페레 공항'도 읽는 내내 색다른 재미를 전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 제일 좋았고, '탐페레 공항'은 사회초년생일 때의 향수를 불러 일으켜서 아련함이 밀려왔으며, '잘 살겠습니다'는 인간 관계와 더불어 사회적 현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어 의미가 컸습니다.
기본적으로 장류진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직장인이 저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희로애락 속에서 정교하게 구축되는 인생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요. 작가 역시도 일을 해오며 체험한 상황을 토대로 이야기를 써내려가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는 문장들이 여럿 있습니다. 게다가 문장도 문장이지만 하나의 단편 자체가 와닿는 부분들이 많았다고나 할까요?
가볍지 않으면서 담백한 문체가 시선을 사로잡았던 단편집이었기에, 장류진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마음 한켠에 저장해 두며 새로운 작품을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해 봅니다. 기회가 된다면 장편소설도 한 번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해요. 요즘 들어 취향에 맞는 단편소설집이 자꾸 눈에 띄어 행복합니다. 이거야말로 삶의 기쁨이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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