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습지에서 생활하며 삶을 지탱해 나간 소녀의 성장담을 필두로 로맨스와 미스터리, 법정스릴러까지 담아냄에 따라 다채로운 장르를 경험하게 해준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꽤 오랜 시간 동안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데다가 최근에는 영화화가 확정돼서 화제를 낳은 것도 사실이랍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마을의 인기 스타인 체이스 앤드루스가 노스캐롤라이나 해변의 습지에서 시체로 발견됨에 따라 단서를 추적해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 속에서 카야 클라크가 용의자로 지목돼요. 카야는 가족들이 모두 떠나버린 습지에서 홀로 살아가며 마을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위대한 일대기를 만나보게 해준 소설의 주인공이었는데요, 사건이 발생한 현재와 카야가 어릴 때부터 혼자 외로이 살아낸 시간의 기록을 과거부터 차례대로 교차해 꺼내놓으며 진실을 맞닥뜨리게 해주는 이야기의 묘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매력은 카야가 머무는 삶의 터전인 습지와 그곳에 존재하는 생물들을 그림을 그려내듯 자연스럽고도 디테일하게 표현해낸 묘사력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인 델리아 오언스가 생태학자라는 직업을 보유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와 두 언니, 오빠가 떠나버렸고 마지막으로 손위 오빠 조디마저 동생을 등져버리는 상황이 찾아오지만 카야는 굳건하게 집을 지키며 성장해 나갑니다. 그 속에서 카야에게 힘이 되어주는 점핑과 데이블 부부가 있었고, 첫사랑인 테이트와 고독을 견디다 못해 마음을 주게 된 체이스와의 연애 또한 카야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도와줍니다.
여러가지 정황상 카야는 결국 재판을 받아야 했지만, 삶과 죽음 한가운데에서도 결과보단 습지를 향한 그리움만을 보여주는 모습이 애달프게 다가왔습니다. 그 와중에 카야가 모아놓은 수집품은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움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고, 나름의 반전과 이에 따른 결말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만들었답니다.
뿐만 아니라 습지 생태계 속 생물들의 본능과 습성을 인간의 삶에 빗대어 보며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는 점도 인상깊었어요. 이로 인해 카야에게 있어 인간이란, 습지 생물들보다 더 위험한 존재로 여겨질 수 밖에 없었음을 깨달았음은 물론입니다. 가족들에게 버려진 이후에 카야를 지켜준 세계는 습지였고, 카야를 위험으로 내몬 것은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야는 살아남았고, 시시각각으로 닥쳐오는 위험을 이겨내며 스스로가 원하는 생을 만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습지와 함께, 좋아하는 시를 읊는 순간들이 특히 그랬답니다.
사실 습지를 배경으로 주인공의 얘기를 펼쳐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부분은 익숙하게 봐왔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갔기에 특별할 것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그렇지만 카야는 마시 걸이었고, 습지를 사랑해서 습지에 남기를 원했으므로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오래 기억될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오래 전 엄마가 언니들에게 남겼던 "무가치한 남자들이 시끄러운 법이거든." 이라는 조언을 오랜 세월이 흘러 이해하게 된 카야의 모습도 감명깊었어요. 카야와 인연을 맺은 남자들을 돌이켜 보면, 그야말로 적절한 명언이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게 된답니다.
대자연의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습지 소녀의 성장기에 푹 빠져들 수 있었던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었습니다. 영화화 된다고 하니까 언젠가는 극장에서 만나 볼 가능성도 높겠지요. 그렇지만, 영화의 영상미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책 속의 문장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기는 힘들 테니, 저는 원작 소설을 접한 것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부디, 이러한 저의 염려가 그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게 될 영화가 이 책을 토대로 탄생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카야가 습지에서 살아남는 법을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과 삶의 방식을 마주하게 돼 흥미로운 시간을 경험하게 해준 책이라 가끔씩 생각이 날 듯 해요. 외로웠지만, 스스로를 위해 해야 할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마시 걸의 활약과 생애는 눈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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