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밤 8시, 네이버 생중계를 통해 연극 [하이젠버그]를 만났습니다. 이 공연은 독일의 물리학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개발한 불확정성 원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라고 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 예측 불가능한 가능성을 전부 열어둔 상태로 두 남녀의 관계를 보여주며 변화하는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을 흥미롭게 풀어냄으로써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알렉스와 죠지의 첫 만남은 역에 설치된 벤치에서 이루어졌어요. 그곳에 앉아 있는 알렉스에게 충동적으로 다가간 죠지가 말을 걸게 되면서 시작되었거든요. 완벽한 우연으로 점철된 두 사람의 조우는 그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일을 경험하게 하며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70대 남성과 40대 여성은 세대 차이를 넘어선 공감대를 형성하며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지금까지 예견됐던 자신의 미래와는 180도 바뀐 길을 걸어가며 내일을 꿈꿉니다. 알렉스는 평생 벗어나지 않았던 런던을 떠나 여행을 함과 동시에 무덤덤한 인생 대신 생동감 넘치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고요. 죠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못지 않게 곁에 있는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어긋난 균형을 올바로 맞추어 나갑니다.
80분 동안 알렉스와 죠지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공연이 진행되는데, 종소리가 울리면 이루어지는 암전에 따라 무대 장치를 이동하고 의상을 바꿔 입으면서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배우들이 직접 지배하는 것이 굉장히 재밌고 볼만 했어요.
지금까지의 삶을 말을 통해 공유하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순간들이 좋았고, 둘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포스터에서도 익숙하게 봐왔지만 직접 움직이는 걸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서 그렇게 바뀌어가는 모습들이 아름다워 보였어요. 정동환 배우와 방진의 배우의 케미도 완벽했고 말이죠.
그리고, 무대가 진짜 예뻤어요. 은은한 조명 안에서 배우들이 움직이며 대사를 칠 때도 좋았지만 이렇게 암전 속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둘 사이에서 환하게 빛나는 바닥이 시선을 집중시켜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잘은 모르겠지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공식을 표현해 낸 것 같은데 굉장히 의미있게 느껴져서 좋았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연극 [하이젠버그]는 불확실한 삶 속에서 꿈꾸는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랑이란 게 사실 그렇잖아요. 무의미한 생의 순간에 빛을 전달하는 감정이니까요. 자신만의 애달픈 사연을 안고 살아가던 보통의 남녀 둘이 상처를 공유하면서 보듬어나가게 될 때 마음에 와닿는 파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안겨주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곱씹어 볼수록 괜찮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명대사도 참 많았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아요. 와인을 나눠 마시던 순간에 죠지가 너무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되면 제대로 알아차릴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뉘앙스로 내뱉던 말들이 특히 인상깊었어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사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알렉스의 "기꺼이."는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한 마디였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남녀 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우리가 관계를 맺게 되는 순간마다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여겨도 될 듯 해요. 그러니, 마냥 주저앉아 있지는 말기로 해요. 언제든 우리 곁에 찾아 올 가능성을 열어두고 긍정적으로 살아가 보아요! 좋은 공연 역시 놓치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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