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진행 중인 연극 [더 헬멧] 룸서울 전막 생중계가 성황리에 마무리됐습니다. 이 작품은 굉장히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요, 하나의 무대가 각각 스몰룸과 빅룸이라는 두 개의 방으로 나누어짐으로써 다른 스토리의 공연이 펼쳐지며 같은 시간에 시작돼 끝나는 구조가 흥미로운 작품이에요.
공연장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유리벽은 불투명한 상태를 유지해 오다가 전기신호를 받는 순간 투명해지며 갈라져 있던 공간 사이를 허무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두 공연이 하나로 합쳐지게 만들며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김태형 연출과 지이선 작가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잡아냄으로써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연극 [더 헬멧]은 크게 룸서울과 룸알레포를, 그 안에서는 각각 빅룸과 스몰룸으로 구분되며 4개의 대본, 공간, 공연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러닝타임은 70분이에요.
룸서울 스몰룸은 학생(Student), 빅룸은 백골단(Combat Police)이라는 제목으로 명명되었고 오늘 시연하지 않은 룸알레포는 아이(Children), 화이트헬멧(Adult)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하얀 헬멧을 키워드로 두 개의 시공간으로 나뉜다는 공통점이 있고, 대한민국 서울과 시리아의 알레포를 통해 메시지를 던지는 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1987년 민주화운동 데모 도중에 전경들에게 쫓기던 학생 두명이 서점 지하의 작은 방에 숨게 되는데요, 그들을 쫓아온 하얀 헬멧을 착용한 기동대 전경인 백골단과 서점 주인이 빅룸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긴장감이 고조됨으로써 두 사람의 모습에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들킬까봐요.
잠시 쉬어가기 위해 들렀다는 백골단과 작은 방을 향한 시선을 돌리기 위한 서점 주인의 팽팽한 기싸움이 중심으로 보여지는 동안, 스몰룸에서 나올 수 없게 된 두 학생의 모습을 작은 화면으로 같이 볼 수 있어서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대화 내용까지는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분위기만큼은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한순간, 전기신호를 받은 유리벽이 투명해지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던 전경과 학생의 눈이 마주치자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 치달았고 숨막히는 장면 전환의 순간이 펼쳐질 것이 암시돼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장면 정말 최고였어요!
현장에서 보면 정말 대단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몰룸에서 후배를 지키고자 굳게 마음 먹은 선배의 모습 또한 인상깊었고, 이런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당황스러워하는 후배 또한 안타까움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다리를 다쳤기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선배가 후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뿐인임을 알기에, 그로 인한 처절함 또한 묻어났습니다.
빅룸에서도 스몰룸 못지 않게 긴박감이 전해졌는데요, 평화로운 분위기가 깨지고 서점 주인을 몰아세우는 백골단의 잔혹함이 눈 앞에서 드러나 슬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후배를 돕고자 작은 방에서 빠져나온 선배의 전력질주로 인한 백골단과의 대립 이후, 암전을 통해 시작된 이야기는 1987년에서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1991년으로 관객들을 안내했습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민주화항쟁 속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백골단과 그로 인해 작은 공간에 갇혀 버린 두 명의 여학생. 이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이전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생중계 화면을 보면 아시겠지만, 빅룸보다는 스몰룸이 훨씬 더 위태로워 보이지 않습니까?
백골단의 두 친구는 오히려 스몰룸의 두 여학생을 걱정하는데요, 이로 인해 두 사람이 나눈 깊은 대화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생중계의 경우에는 빅룸 위주로 공연을 내보내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어요.
백골단원이지만 어설픔이 묻어나는 두 남자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발을 들인 사연을 확인하게 하며 연민을 자아냈답니다. 대장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이죠. 여기에 더해, 굉장히 심각하게 얘기를 해나가며 몸싸움까지 펼치던 두 여학생의 결말 또한 궁금증을 증폭시켰습니다.
표면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껍데기를 부수고 한꺼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던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감동의 결말을 전합니다. 1991년의 룸서울에선 헬멧 B(HELMET B)로 불리는 여배우의 두드러지는 활약과 카리스마가 돋보여 이로 인한 전율까지 마주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에이리언 포스터와 영화 얘기도 마찬가지였어요. 백골단원은 영화 속 여주인공을 비웃었지만, 후배를 아꼈던 선배는 오히려 영화를 꼭 보라는 말을 남겼고, 그녀는 잊지 않았습니다. 지이선 작가는 실제로 영화 에이리언의 여전사 엘렌 리플리(시고니 위버)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품 속 캐릭터를 탄생시켰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에이리언까지 섭렵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룸서울 전막 생중계는 더블 캐스트로 구성된 배우들이 총출동해 장면의 반씩을 각각 소화해내며 색다른 매력을 뽐낸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배우가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다시 한번, 헬멧 B를 맡은 손지윤 배우와 정연 배우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공연이 끝나고 같은 배역을 연기한 두 배우가 함께 인사하는 모습도 훈훈했습니다. 연극 [더 헬멧]의 경우에는 공연 시간에 생중계를 하게 될 경우, 관객들의 얼굴이 노출될 상황이 다분하므로 공연이 없는 금요일 오후 3시라는 파격적인 시간을 선택한 것으로 아는데 덕분에 편안하게 잘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날씨 추운 겨울이라서 더더욱 만족스러운 네이버 생중계. 연극 [더 헬멧] 룸서울 빅룸과 스몰룸을 한 장면에서 동시에 만나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어요. 잔잔한 웃음을 유발하긴 하나 내용 자체가 묵직하기에 직접 공연을 관람하고 그 시대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로 이 공연의 풀네임은 The Helmet(더 헬멧)-Room's Vol.1입니다. 그런 이유로 아마 2편은 물론이고 계속해서 연이은 시리즈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더 기대가 되기도 하네요. 공연은 2017년 12월 19일에 개막해 내년 봄인 2018년 3월 4일까지 계속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기간 내에 잊지 말고 공연장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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