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에서 12부작으로 방영됐던 비긴어게인은, 일요일 밤의 시간을 장식하며 좋은 음악과 아름다운 장소의 풍경을 선사하며 월요일이 다가오기 전 힐링을 선물해준 따뜻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단언컨대, 제가 지금까지 만나봤던 방송 중에서 최고의 음악프로그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꿀조합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션인 이소라, 유희열, 윤도현과 그들 곁에서 음악을 배워나가며 누나와 형들을 위한 배려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노홍철의 환상적인 호흡이 돋보이는 멤버 구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유명세를 떨치고 있으나 낯선 나라에서는 한낱 이방인에 불과한 네 사람의 버스킹 도전기는 그런 이유로 많은 의미를 던져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음악에 처음 발을 들였던 시작의 순간, 그 반짝임을 기억하며 조금씩 천천히 물들어 가는 이들의 모습이 눈부셨으니까요.
프로그램의 취지에 잘 맞는 그룹명 비긴어스로 활동하게 된 네 사람의 첫번째 목적지는 바로 아일랜드였습니다. 이곳은 영화 '원스'로부터 시작해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를 통해 사랑받고 있는 존 카니 감독의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잠시 쉬거나 밥을 먹거나 버스킹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 외의 시간 모두를, 그들은 버스킹 연습에 투자했습니다. 여행이라는 명사가 붙어있긴 하나 음악이라는 단어에 무게가 보다 더 집중되어 있어 쉴 틈이 없어 보이긴 했으나 방송의 중심을 이루는 멤버들의 목소리는 황홀함을 전해주며 깊이 빠져들게 했기에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덧붙여, 제작진들의 노고도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에만 집중하라는 의미에서 좋은 숙소와 풍성한 음식 제공까지 완벽 그 자체였답니다. 이소라가 마지막회에 다다라 멤버들은 물론이고 스탭 전부를 챙기는 모습 속에서 돈독함이 엿보였던 것은, 그들을 향한 고마움의 표현이라고 봐도 되겠지요.
세심한 감성의 소유자 이소라는, 비긴어게인을 통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서 더 반가웠어요. 집순이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뮤지션으로 본인 또한 인터뷰에서 지구에 살면서 밖에 얼마나 더 나갈지 알 수 없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할 말 다 한거죠.
하지만, 일단 밖으로 걸음을 내디딘 그녀는 음악을 하지 않을 땐 노홍철의 팔짱을 낀 채로 거리를 누비고 멤버들과 제작진을 챙기며 러블리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방송의 말미에선 좋은 사람들과 다시 또 여행을 오고 싶다는 말을 남겼으니, 이소라의 도전은 성공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윤도현은, 치열한 삶 속에서 제대로 도전할 줄 아는 ROCK바보로 웃음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뿜어내며 힘든 상황에서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가는 마이웨이, 윤도현! ROCK과 함께 하지만 다른 음악 장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깊은 울림을 경험하게 해줘 감동이었어요.
특히, 영국 체스터의 시계탑을 뒤로 한 채로 불렀던 YB의 곡 'My Soul'은 정말 최고였어요. 맑은 날씨에 어우러진 그의 모습과 노래는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소라와 윤도현이 비긴어스의 남녀 보컬로 최상의 하모니를 들려줬다면, 유희열은 피아노 연주로 멜로디에 힘을 더해주는 역할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장본인으로 놀라움을 안겨주었어요. 처음 듣는 곡의 코드를 쉽게 따내며 몰입하는 모습과 절대음감을 과시하지 않고 일이기에 당연하다고 말할 때는 감동!
그리고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도 꽤 많이 들려줘서 좋았어요. 제가 즐겨듣던 '여름날'이 나지막하게 울려퍼질 때는 정말 최고였다죠. 숙소의 좋은 방을 걸고 내기할 땐 전력을 다함으로써 승자의 당당함을 확인케 해준 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프로그램과 더불어 멤버가 공개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노홍철이라는 이름에 의문을 많이 가졌을텐데, 막상 방송이 되고나니 그가 정말 꼭 필요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예민한 이소라를 잘 챙겨줄 뿐만 아니라 둘이 취향도 비슷해서 같이 수다 떠는 장면도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었어요.
그리고 단순히 세 멤버를 챙기는 역할에서 벗어나 그들의 성원에 힘입어 같이 공연하며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때는 비긴어스의 막내다운 면모를 드러내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듣고 싶어하는 곡을 들려주기 위해 시간을 벌어 코드를 따던 유희열과 연습실에서나마 소원을 들어주던 이소라도 츤데레!
아일랜드에선 영화 '원스'의 주제곡인 'Falling Slowly'가 울려퍼졌던 악기점에서 그들의 목소리로 불려지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저는 이때 '싱 스트리트'의 수록곡인 'To Find You'에 더 꽂혔던 것 같아요. 윤도현 덕택에 자주 감상하게 된 곡이기도 합니다.
많은 휴식이 필요한 이소라 대신 거리로 나가 휴식을 취하며 버스킹을 먼저 경험했던 세 사람의 멋진 시간도 기대 이상이었어요. 저는 언제쯤 아일랜드에 가볼 수 있을지, 그것이 궁금해집니다. 한 번은 꼭, 가봤으면 싶은데 말이죠.
슬래인 캐슬의 고혹적인 분위기가 비긴어스와 잘 어우러졌던 시간. 악기를 점검하는 등의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즉석에서 이루어진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는 그들이 머무는 장소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눈물을 흘리게 만들기도 했어요.
제가 또 많이 애정하는 이소라의 곡이기도 해서, 이렇게 라이브로 들으니 새삼 더 와닿고 그렇더라고요.
아일랜드 골웨이에서의 버스킹은 실력자들의 공연이 이루어짐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아 당황스러웠던 순간이었으나 딱히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은 또 아니라서 한없이 바라보게 됐어요.
비긴어스가 되어 경험하는 시작이 만만치 않았지만, 꼭 필요한 순간이었기에 좋은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예상해 봅니다.
비긴어스는 총 4개국을 여행하며 버스킹을 펼쳤어요. 아일랜드, 영국, 스위스를 지나 프랑스까지. 스위스에서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서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추가적인 세션 투입과 프로페셔널한 준비 과정이 더해졌기에, 그때는 물 만난 고기처럼 관객을 휘어잡으며 폭발하는 에너지를 보여줘서 색다르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비긴어스, 그들끼리만의 버스킹이 더 맘에 들긴 했어요. 프랑스 샤모니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공연, 이소라와 유희열과 윤도현과 노홍철이 다 같이 부른 들국화의 '축복합니다'는 마무리에 잘 어울리는 곡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노래만으로 가득한 처음이자 마지막 버스킹이었지만,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온전히 자리를 지키거나 혹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도중에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들이 음악이 존재하는 이유에 의미를 부여해줘 더 뜻깊지 않았나 싶어요.
그들이 음악하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이, 저 역시 초심을 떠올려보게 됐던 멋진 음악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시즌2에 대한 가능성도 열려 있는 데다가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아 기대해 보려고 해요. 비긴어스 멤버 그대로 와도 저는 환영입니다. 세계 4개국에서 진행된 한국 뮤지션들의 버스킹 도전기는 완전 성공! 어디서나 통하는 음악의 힘을 증명하게 해준 비긴어게인과 함께 할 수 있어 즐거웠어요.
내 마음 속에 최고의 음악 프로그램으로 등극, 그리고 저장! 종영에 대한 아쉬움은 발매된 음원으로 달래봐야겠어요. 우리, 좋은 음악으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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