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 스티븐스]는 마음을 파고드는 감성이 돋보이는 이야기 속에서 잔잔한 위로를 전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인 레이첼 스티븐스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총 3일간 열리는 연극 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된 세 아이들과 함께 하며 경험하는 순간들이 생각지 못했던 감동을 전해줘서 보는 내내 미소를 짓게 되는 일이 많았어요.
그리하여 연기에 특별한 재능이 있으나 행동장애로 인해 약물치료 중인 빌리, 뛰어난 사교성을 지님과 동시에 곁에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이 존재하는 샘, 매사에 완벽함을 기하는 모범생 마고, 이렇게 3명의 학생이 레이첼의 낡은 자동차를 타고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레이첼이 운전하는 내내 라디오 채널에서 올드팝이 흘러나오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마고, 샘과 다르게 빌리는 미스 스티븐스와 빌리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거워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때부터 두 사람의 교감이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들을 무사히 목적지에 데려다 주긴 했지만 도로를 달리던 도중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문제가 생겼던 만큼 레이첼은 이른 아침부터 자동차를 수리하기 위해 움직이는데, 이때 빌리가 리허설 시간에 여유가 있다는 거짓말로 동행을 요청함으로써 둘은 뜻밖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빌리는 레이첼에게 다가가며 선생님이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대해요. 이로 인하여 미스 스티븐스는 예상치 못한 때에 거침없이 돌진하는 빌리의 모습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천천히 진심을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게 되고요.
특히, 침대에서 실컷 뛰어놀던 레이첼과 빌리가 발코니로 나와 대화를 하던 장면은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빌리에게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던 레이첼이 확인하게 해준 공허함이 제대로 와닿았거든요.
때때로 빌리의 허물없음이 선생님과 제자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만들 때도 있었지만, 이럴 때마다 레이첼이 중심을 잘 잡아주며 현실을 직시하게 해줘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답니다.
빌리는 다른 사람의 고독을 알아채는 능력을 가짐과 동시에 섬세한 감정을 타고난 캐릭터로 보여졌어요. 평소 관심있게 지켜봐왔던 선생님을 향한 태도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고 있었으니까요. 이와 함께, 얘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다 얘기할 수는 없는 거라던 빌리의 말에서 깊이가 느껴졌음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빌리 덕택에 미스 스티븐스는 오래간만에 따뜻한 위로를 받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감정과 행동을 주체하는 일이 쉽지 않은 빌리가 눈 앞에서 마주하게 된 선생님의 거부는 예상치 못한 기폭제로 작용하며 둘의 관계에 그늘을 드리우게 되고 말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 경연대회는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그 속에서 무대 위에 올라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 담긴 대사를 풍부한 감정 연기와 함께 선보인 빌리의 모습은 영화 [미스 스티븐스]의 명장면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에 충분했습니다.
빌리 역으로 열연한 티모시 샬라메의 인기는 그야말로 엄청난데요, 이 영화를 보면서 실력파 배우임을 제대로 깨닫게 돼 엄지를 척 치켜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독백 연기도 대단했지만, 레이첼의 마음을 흔들며 속깊은 이야기를 꺼내놓게 만들던 찰나가 저는 더 인상적으로 남았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덧붙여, 지금보다 더 앳된 티모시 샬라메의 소년 같은 이미지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 이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캐릭터에 걸맞게 시시때때로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던 눈빛과 표정이 의미심장했어요.
그리고 샘 역의 앤서니 퀸틀과 마고 역의 릴리 라인하트 역시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빌리를 포함, 세 친구가 지닌 개성이 확연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연기에 재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연극 경연대회에 오기 위해 탁월한 기획 능력을 발휘한 마고와 친구들과 더불어 선생님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녹이는 샘의 성정이 도드라져 눈길을 사로잡았답니다.
솔직히 연극 경연대회장으로 출발할 때만 해도 셋은 별로 안 친했는데 빌리의 추가시험을 위해 마고와 샘이 도움을 주면서 하나가 되었고, 그로 인하여 온 마음을 다해 꼬옥 껴안은 채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 예뻤어요.
덧붙여 미스 스티븐스가 내뱉은 명언들도 잊지 못할 거예요. 멀쩡하게 살기가 힘든 인생이고, 사람들은 대부분 재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하!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어도 서로를 잘 몰랐던 이들이 낯선 곳에서의 여정을 통해 새로이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이나마 기댈 수 있었던 이야기가 영화 [미스 스티븐스]에 존재했습니다. 결국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외로움을 말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와중에 연극이 끝난 극장에 홀로 남아 눈물을 삼키던 레이첼로부터 시작된 영화가 3일 만에 가족들과 만나 행복해하는 세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레이첼로 마무리돼서 이에 따른 여운이 상당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미스 스티븐스의 삶은 예전보다 덜 외로운 대신에 더 많이 풍요로워지게 될 거라고 믿어보기로 했어요.
결론적으로 티모시 샬라메도 좋았지만, 영화의 타이틀을 거머쥔 미스 스티븐스 역의 릴리 레이브가 건네는 감정의 밀도가 공감대를 자아내서 이러한 부분에 더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릴리 레이브라는 새로운 배우를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고 말이지요.
"선생님도 누군가에게 기대야 해요."라며 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레이첼을 위로하던 빌리의 말이 따뜻함을 전해주었던 영화가 바로 [미스 스티븐스]였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혹은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기댈 곳이 필요한 우리들을 위한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8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 오히려 기나긴 통찰의 시간을 맞이하게 해줘서 뜻깊었어요.
여기에 더해 밴드 아메리카의 'Sister Golden Hair'의 중독성도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음을 인정합니다. 미스 스티븐스의 속내가 담긴 노래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도 좋았던 곡이었어요. 그리고 만약 혹시라도 아직 기댈 수 있는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너무 절망하지 말고 일단은 나 자신부터 사랑해 보기로 해요.
침대에서 신나게 점프하며 슬픔을 잊은 미스 스티븐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상기하며, 오늘의 영화 이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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