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어마어마한 작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놀라운 속도로 신간을 발매하는데, 출시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진입하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니 로봇설이 나도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나 할까요? 우리가 책을 읽어나가는 것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글을 써내려가는 시간이 훨씬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만큼 말이죠. 요즘은 그래서 사실, 새로운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러려니 하고 말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제가 선택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역시나 신간 중 하나이긴 했지만 추리소설은 아니었어요. [인어가 잠든 집]은 휴먼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으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에 대해 곱씹어보게 만들며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어볼만 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읽은 지 좀 됐는데 지금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거든요.
가즈마사와 가오루코 부부는 딸 미즈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이혼을 미룬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딸이 수영장 물에 빠져 의식 불명 상태가 됨에 따라 뇌사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의사는 장기 기증에 대한 의향을 묻는데, 가오루코는 이를 거부하고 미즈호를 집에서 돌보기로 결심합니다.
미즈호를 위한 연명 치료는 가즈마사를 통해 뇌나 경추가 손상돼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가 뇌에서 보내오는 신호로 움직이게 돕는 기술의 개발자 호시노에게 맡겨 진행하게 돼요. 호시노 덕택에 미즈호의 팔다리는 움직이는 게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집착에서 광기로 변해갔고, 아들 이쿠토는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반항심이 커져가기만 했습니다.
참고로 뇌사란, 뇌의 활동이 완전하게 정지됨에 따라 회복불능한 상태가 되는 일을 의미한다고 해요. 뿐만 아니라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의 가족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장기 기증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으나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픈 부모는 없기에 미즈호를 곁에 두려는 가오루코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어요. 첨단 과학 기술에 희망을 걸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거겠죠. 하지만 호시노가 개발한 건 뇌가 살아있는 환자들을 위한 것이었기에 가오루코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고 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어가 잠든 집]은 뇌사를 소재로 풀어낸 휴먼 미스터리의 절정을 선보이며 장르에 걸맞는 이야기 속에서 고도의 몰입감을 경험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추리 소설로 유명하지만, 다른 분야의 소설 역시도 방대한 양의 정보를 수집해 자신만의 필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재능이 탁월해서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구나 싶었답니다.
가오루코의 집착을 넘어선 광기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감정이 아니었기에 더 마음이 아파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제목이 전하는 의미가 더 깊이 와닿아서 착잡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말이죠.
이와 함께, 소설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는 인물의 정체가 놀라움과 감탄을 동시에 전해줘서 이로 인한 여운도 상당했습니다. 미스터리와 같았던 시작을 깔끔하게 마무리짓는 작가의 능력이 다시금 발휘된 부분이었던지라 역시나 엄지를 척 치켜들게 됐습니다.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을 가진 책이라서 끝까지 읽는 일이 만만치 않았으나 작가 특유의 개성이 이 작품에도 스며들어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무사히 잘 읽었습니다. 덧붙여, [인어가 잠든 집]의 경우에는 작가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2015년에 발표된 책인데 우리나라에서 조금 늦게 출시가 된 거라고 하니 히가시노 게이고 로봇설은 잠시 넣어두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미 또다른 신간이 나왔으니 조만간 다시 생각날지도 모르겠네요.
추리소설보다 훨씬 더 깊이있게 파고들었던 휴먼 미스터리 [인어가 잠든 집]이었습니다.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읽는다면 감정 이입이 훨씬 더 심화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한 번쯤은 관심을 갖고 읽어보며 작가가 던져 준 생각할 거리를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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