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더캐슬]은 인간 내면에 자리잡은 선과 악을 통해 '실존'의 의미에 화두를 던지는 작품으로써 현재 YES24 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 중입니다. 오늘은 이 공연의 생중계가 진행된 만큼, 방구석 1열에서 편안하게 뮤지컬의 묘미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해 즐거웠어요.
이번에는 네이버가 아니라 카카오(kakafo) tv 멜론티켓 채널을 통해 실황 생중계를 만나볼 수 있어 신기했는데 요, 생각보다 화질도 괜찮고 끊김도 거의 없어서 만족스러운 시청이 이루어졌던 하루였습니다.
미국 최초의 연쇄 살인마의 실화를 모티브로 가져온 공연으로, 창작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걸맞는 아이디어가 돋보여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답니다.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선과 악을 표면에 끄집어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독특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참고로 뮤지컬 [더캐슬]의 시놉시스는 위와 같아요.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갈 곳 잃은 사람들로 가득한 19세기 시카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랍니다. 박람회의 열기로 가득 채워진 도시에 도착한 벤자민 핏첼과 캐리 캐닝은 전재산이 담겨 있던 가방을 잃어버린 채 헤매이다 헨리 하워드 홈즈를 만나게 되고, 그가 소유한 캐슬에 머물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잉글우드 거리를 정처없이 걷다 우연히 만난 토니가 그들에게 먼저 호의를 베풀었으나 허름한 겉모습을 본 두 연인은 조심하라는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토니가 아닌 홈즈를 선택하고 말아요.
낯선 도시에서 과거를 잊고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고 싶었던 캐리와 벤자민은 빈털털이 신세였기에 결국 홈즈가 하는 일이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가담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서서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답니다.
상처 뿐인 지난 날을 만회하고픈 마음에 행복을 얻고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 캐리와 결국 그녀를 내버려 둘 수 없어 같은 길로 나아가기 시작한 벤자민의 변화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홈즈의 잔인무도함이 극에 달했고, 벤자민과 캐리 역시도 그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변해가는 게 안타까웠어요.
스토리 자체는 어떻게 보면 참 심플한데, 막상 공연을 마주하게 되니 머리 속에 물음표가 여러 개 떠다니는 순간을 맞닥뜨리지 않기가 힘들어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극의 초반과 서서히 드러나는 반전까지는 예상이 됐어도 괜찮게 전개가 이어진다고 생각해 집중해서 관람할 수 있었는데, 클라이막스로 향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이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놓기에 급급해 미처 매듭을 제대로 짓지 못한 채로, 매우 급히 결말을 내버리고 끝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공연이 진행된 시간은 예상보다 짧았지만, 체감 시간이 오히려 길게 느껴져 깜짝 놀랐던 뮤지컬 [더캐슬]과의 한때였습니다.
그 와중에도 배우들은 멋졌습니다. 헨리 하워드 홈즈 역의 에녹 배우는 친절한 악마에서 광기로 인해 포효하는 카리스마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가벼운 몸놀림을 확인하게 해준 점프력과 웃음 속 날카로운 악의 본능이 번뜩여 섬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연장에서 본 건 아니었지만 안방 1열까지 전해지는 시원한 가창력도 최고였어요. 연기와 노래가 모두 출중해서 엄지를 척 치켜들게 도왔던 장본인이기도 했어요.
벤자민 핏첼 역의 윤소호 배우는 보면 볼수록 잘생김이 눈에 띄어서 절로 시선이 갔습니다. 특히, 옆모습이 최고였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은근한 미성과 낮게 깔리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이었어요. 오직 캐리만을 바라보던 순정파 사랑꾼의 돌변이 감탄을 자아냈던 찰나도 잊을 수 없다지요.
캐리 캐닝 역의 김수연 배우도 최고였어요. 시카고에서도 절망적인 나날의 연속이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행복을 찾아 나서며 선택을 해 나가는 모습이 특히나 감명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노래 부를 때마다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드는 탁월한 실력 역시도 환상적이었어요. 직접 공연장에서 보고 싶어질 정도였답니다.
토니 역의 이용규 배우는 앞선 세 배우에 비해 비중이 많지 않으나 등장할 때마다 존재감이 상당해서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노래를 정말 잘하더라고요. 덧붙여 적재적소에서 모습을 보여주며 사중창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찰나들도 나름의 포인트가 되었음을 인정합니다. 캐리, 홈즈, 벤자민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화음을 쌓아가는데 토니는 어느 순간 뿅! 하고 나타나서 완벽한 콜라보레이션을 보여주니 이보다 완벽하지 않을 순 없었습니다.
선과 악이 공존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줬던 뮤지컬 [더캐슬]은 초연되는 창작 공연 특유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닌 작품이었습니다. 탄탄한 개연성을 위해서라도 장면 추가나 스토리상의 수정 혹은 보완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아직 공연 중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일단, 제 취향은 아니었던 걸로^^;
호텔 캐슬을 극대화한 무대가 괜찮았고 선택을 강요하면서 "죽거나 악마가 되거나"를 부르짖던 넘버도 귀를 사로잡았던 뮤지컬 [더캐슬]이었습니다. 라이브 밴드의 연주와 배우들의 활약이 공연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서 재밌게 잘 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기대감을 충족시키진 못 했으니, 조금 더 분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래간만의 공연 리뷰는 그런 의미에서 이쯤에서 마무리할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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