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조남주 작가가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재탄생됨에 따라 책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었습니다. 1982년 봄에 태어나 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김지영의 삶이 딸, 아내, 동료, 엄마 등의 역할 변화로 인해 달라지는 면모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답니다.
이야기는 지영과 대현, 그리고 두 사람의 딸 아영이 명절을 맞이해 부산 시댁을 방문하면서 시작됩니다. 시가족들과 연휴를 보내던 중에 지영이 갑작스레 시어머니를 사부인으로 지칭하며 자신의 엄마 미숙의 말투로 말을 하자 모두 당황하는 가운데, 대현은 아내와 딸을 데리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갑니다.
매일 반복되는 지영의 하루는 두 돌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을 돌보며 집안일을 해나가는 것만으로 바쁘기 그지 없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 상사에게 인정받는 기쁨을 누렸던 순간도 잠시,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달라진 인생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도울 뿐이었습니다.
괜찮냐는 물음에 항상 괜찮다고 답했지만 정말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던 82년생 김지영의 일상은 공허함 속에서 빙의 현상을 거듭 마주하게 했고, 자신의 상태를 직시하게 된 그녀는 대현의 권유에 따라 정신과를 방문해 상담을 받는 과정을 이어가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원작소설이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를 통한 정보수집을 토대로 다소 딱딱한 문체와 다큐멘터리적 스토리를 선보인 반면,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경우에는 배우들의 연기와 잔잔한 영상미를 중심으로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게 만들며 공감대를 형성시켜 흥미로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소설과 달리, 현재를 기반으로 과거 회상을 곁들여 몰입감을 높인 점도 눈여겨 볼만 했어요. 이로 인해 과거에 머물기보다는 현실을 꿋꿋하게 살아내며 보다 나은 미래로 향하겠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만나보는 것이 가능한 점도 뜻깊었습니다.
소설은 아무래도 결말까지 절망과 비극을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감돌아 마음이 무거웠는데, 영화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인간의 의지와 희망을 확인하게 돼 감동적이었음은 물론입니다.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경험하게 만든 고뇌와 몰래카메라 문제가 대한민국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들면서도, 점점 더 변화를 꾀하는 시대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곱씹어 볼만 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긴 하지만 말이죠.
이 작품 속에선 엄마 김지영의 모습이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남편이 일을 하러 나간 시간 동안, 아이를 돌보며 차 한 잔 마시는 잠깐의 여유를 가지는 게 쉽지 않았는데 맘충이란 단어까지 들어야 했던 상황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아프게 만들기 충분했어요.
뿐만 아니라 남편의 든든한 지원에 힘입어 재취업을 꿈꾸지만, 결국에는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다시금 깊은 슬픔과 우울감에 빠져드는 지영의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답니다.
그리고,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눈물을 훔쳐야 했던 명장면으로는 외할머니로 빙의한 딸 지영이 엄마 미숙(김미경)과 대화를 나누던 찰나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아픈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너 하고 싶은 거 하라던 미숙의 말에 울지 않을 수 없었어요.
영화는 온전히 지영에게 초점을 맞춘 관계로 미숙이 살아 온 삶은 자세히 표현되지 않지만, 지영의 엄마 역시도 순탄치 않은 생을 이어왔으니 이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원작소설을 꼭 읽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 되지 않아 안절부절 못하는 지영에게 얌전히 있다가 시집이나 가라던 아버지의 말에 당사자보다 더 분노하며 "지영아, 너 얌전히 있지마. 나대, 막 나대!"라던 미숙의 응원도 통쾌함을 전해주었음은 물론입니다.
지영의 남편 대현은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소설보다 더 나은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영이 재취업에 대한 진심을 털어놨을 때 육아휴직 얘기를 꺼내던 찰나가 매우 감명깊었어요. 대신에, 시어머니의 반대로 인해 충돌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지만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지영과 가장 가까운 존재로 곁에 머물며 가족 사이에서 중재하는 역할 또한 도드라졌음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공유도 연기를 잘했고 말이지요.
82년생 김지영씨는 삼남매 중 둘째 딸로, 언니 김은영씨와 동생 김지석씨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중에서 언니 은영(공민정) 캐릭터가 정말 좋았어요. 다른 이들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며, 결혼하란 말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혼자서도 문제없음을 내비치는 당당함이 배우고 싶어졌다고나 할까요? 달라져 가는 사회의 일부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해서 마음에 쏙 들었답니다.
지석(김성철)이 지영의 집에 방문할 때 사갔던 단팥빵이 실제로는 누나가 싫어했던 빵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 장면도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지영이 크림빵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 더 이상의 실수는 없겠죠? 이건 사실 지석의 잘못은 아니었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불러 온 오류와 같은 거였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만년필을 선물하는 찰나를 볼 땐 찡하기까지 했다지요.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나의 이야기"라는 카피문구가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김지영으로 분한 정유미의 열연은 정말 최고였어요. 담담함 표정 속에 녹아든, 녹록치 않은 생의 희로애락이 정유미의 연기 내공으로 뿜어져 나와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확실히 소설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작품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결말에서 이야기가 극대화되며 마무리를 짓는데 그게 참 따뜻했어요.
제가 본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마냥 허구라고 볼 수 없는 여성들의 삶이 담긴 작품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영화 속에서 펼쳐진 이야기 자체가 머나 먼 과거가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그렇게 되어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시간은 조금 더 필요할 것으로 보여지네요.
소설과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의 차이점이 궁금하다면, 두 장르로 뻗어나간 [82년생 김지영]을 전부 만나보시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소설을 접한 분들이라면 영화가, 영화를 먼저 관람한 분들이라면 소설이 궁금해지지 안을까 싶어요. 저도 이번 기회에 책을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을 재탄생시켜 공감을 자아냈던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많은 분들이 김지영의 이야기를 들어봐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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