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는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응 매뉴얼까지 알차게 담아내면서 깨알 재미 가득한 액션극을 선보임에 따라 여러모로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이었습니다. 화학테러가 발생함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는데, 주인공의 삶이 녹록치 않았던지라 공감대가 더 깊이 형성되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영화를 보러 가면서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훨씬 더 재밌게 즐기며 감동까지 확인하게 돼 흥미로웠던 하루였습니다. 웃고 울면서 보긴 했지만, 솔직히 울게 될 줄은 몰라서 살짝 당황했다고 합니다.
용남은 대학교 산악 동아리 에이스 출신으로 이 방면에 있어서는 능력이 탁월했으나 취업 관련해서는 도무지 답이 없는 백수로, 졸업 후 지금까지 눈칫밥을 먹으며 지내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래도 운동 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았고, 이력서도 꾸준히 내며 미래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아직 실패한 인생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칠순 잔치가 열리던 곳에서 부점장으로 일하는 동아리 후배 의주와 어색한 재회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잠시 후, 가족들이 모두 모여 흥겨움을 발산하던 도중에 도심 전체가 유독가스로 뒤덮이는 일이 발생함에 따라 빌딩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탈출을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하기에 이릅니다.
유독가스가 아래쪽에서부터 위쪽으로 점점 올라오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빌딩 옥상으로 나가는 것 뿐이었기에 잠긴 옥상 문을 열고자 용남은 산악 동아리에서 갈고 닦은 스킬을 발휘해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 애씁니다.
대학생 시절, 용남은 의주에게 고백을 했으나 거절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의주를 향한 마음이 남아 있었기에 굳이 어머니의 칠순 잔치를 그녀가 일한다는 곳으로 잡아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성공합니다. 게다가 괜찮은 직장에 취직했다는 거짓말까지 하고 말아요.
의주는 그동안 구 점장의 열렬한 구애가 부담스러웠지만 직장 상사라는 이유로 유예기간만 늘려가던 중에 용남을 만나게 됐어요. 다만, 만나자마자 거의 생존이 달린 위급상황에 직면함으로써 진심이 담긴 대화는 뒤로 한 채 산악 동아리 멤버다운 기지를 발휘하며 용남과 힘을 합쳐 시련을 이겨나가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여기서 일단 배우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구 점장은 강기영이 맡았는데 굉장히 얄밉고 느끼한 감초 캐릭터 역할로 딱이었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연 배우 2명이 출연하는 것만 알고 가서 깜짝 놀랐고 반갑기도 했다지요.
의주는 고객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필요한 재난 대응 매뉴얼을 완벽히 숙지하고 있던 최고의 직원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회장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건 점장이 아닌 부점장의 몫이었는데, 이로 인하여 재난 상황에 닥쳤을 때 스마트폰 불빛과 목소리로 모스부호 중 S.O.S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내는 장면이 반복돼서 굉장히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참고로, SOS의 모스부호는 •••(S) 와 ㅡㅡㅡ(O)로 이루어져 있으니 기억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즉, SOS의 모스부호는 아래와 같습니다.
* SOS 모스부호 *
•••ㅡㅡㅡ•••(따따따 따아 따아 따아 따따따)
동그란 점 세개는 단음으로 따따따, 직선 세개는 장음으로 따아 따아 따아, 이렇게 외치며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고 합니다. 영화 [엑시트]에서는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스마트폰 플래시를 작동시키고 여기에 손을 부딪치며 불빛으로도 신호를 보내 기억에 남았습니다.
결국에 가족들은 무사히 구조되지만 헬기가 옮길 수 있는 인원이 가득 차서 용남과 의주, 둘만 옥상에 남겨집니다. 영화 [엑시트]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때부터 펼쳐진다고 보면 됩니다. 산악 동아리 멤버를 활동해 오며 다져진 체력과 기술로 의기투합한 의주와 용남의 재난 탈출 액션극을 비로소 제대로 마주하는 게 가능해진 순간이니까요.
겨우 15분 동안만 사용할 수 있는 방독면을 뒤집어 쓰고, 쓰레기봉투로 방호복을 만들어 거리를 질주하는 둘의 모습은 그래서 더 눈여겨 볼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달리기와 점프, 착지를 이어가며 생명을 위협하는 유독가스를 피해 높은 곳으로 향하는 장면 역시도 마찬가지였답니다.
그리하여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체력과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많았던 작품이었기에, 배우들의 활약에도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용남과 의주는 가족과 고객들을 지키기 위한 사명감을 필두로 스스로를 희생했지만 그 와중에 눈물이 터져 나오는 걸 멈추지는 못했어요. 빨리 안전한 장소로 가고 싶어 묘안을 낸 것도 잠시, 학원에 갇힌 아이들이 보이자 다시 한 번 구조되는 것을 포기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면서도 애처로움이 묻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치만 멋졌어요!
게다가 용남이 고층 빌딩에서 일하는 직장인이었더라면 상황이 더 나았을 거라고 울면서 말할 땐 취업준비생의 짠내가 고스란히 전해져 안쓰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의주는 부모님과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기에 이로 인한 짠내가 가득했고요.
그 와중에도 탈출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스릴이 넘치는 시간이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유튜버들의 생방송과 드론들이 건넨 도움은 SNS가 생활화된 시대를 반영한 느낌이라 고개를 끄덕거리며 볼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두 사람이 살아남은 방법에 대한 의문은 엔딩 이후에 에필로그 영상으로 맞닥뜨릴 수 있으니 이 점을 기억하시면서 영화를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임윤아와 조정석의 열연에는 다시금 힘찬 박수 갈채를 보냅니다. 체육인에 걸맞는 다채로운 액션씬의 향연이 두 배우로 인해 살아났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둘 다 얼굴 막 써가면서 우는데 절실함이 도드라져서 저도 울먹이게 되는 순간이 상당했답니다. 곳곳에 포진된 웃음코드도 나쁘지 않았고요.
전우애가 느껴지던 둘의 핑크빛을 예감하게 만드는 엔딩도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가 펼쳐지는 동안에는 로맨스가 뿜어져 나올 여력이 없었지만 은근한 복선을 남김에 따라 미소 짓게 만들어 좋았어요.
아, 그리고 신파 또한 볼 수 없는 영화였어서 흡족함을 남겼습니다. 오로지 재난 탈출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괜찮았어요. 더불어 까메오로 출연한 이들 중에서는 이동휘의 얼굴이 기억에 남네요. 긴가민가 했는데 맞다고 해서 그렇구나 했어요. 하하!
마냥 가볍게 볼 수 없는, 묵직한 메시지를 녹여내서 곱씹어 볼만한 여지가 많은 영화였다는 점에서도 의외성이 존재해 저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이와 함께, 영화 말미에 들려오던 이승환의 '슈퍼 히어로'도 작품에 딱 어울리는 곡이었어서 이로 인한 여운도 남았음을 밝힙니다. 특히, 영화 [엑시트]에 삽입된 '슈퍼 히어로'에는 SOS 모스부호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감상하면서 구조신호를 머리 속에 꼭 저장해 두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재난은 물론이고 삶에 대한 경각심까지 불러 일으켰던 영화가 [엑시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독가스가 도심에서 퍼져 나가게 된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재난을 많은 사람들이 겪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말이죠. 우리의 삶과 언제 닥쳐 올지 모르는 재난에 대한 경고와 대응 매뉴얼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 작품이니 관심 있다면 영화관에서 직접 만나보시길 바랄게요. 날 더울 땐 역시, 시원한 영화관이 최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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