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 작가의 웹툰 '낮에 뜨는 달'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고 있는 작품 중의 하나였습니다. 단행본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먼저 알고 이야기를 접하게 됐으니 저도 꽤 많이 늦은 셈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읽어나갈 때의 속도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만큼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하며 생각보다 빨리 결말에 도달하게 만들어서 놀라웠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타임슬립이 현대를 사는 주인공 강영화가 잠들면 꾸게 되는 꿈과 그녀의 전생으로 보여지며, 신라시대가 이야기의 주축을 이뤄 펼쳐지는 시공간을 초월한 로맨스가 흥미로웠답니다.
동갑내기 친구 민오를 짝사랑해 오던 영화는, 죽은 줄 알았던 그의 동생 준오가 다시 살아나면서 천도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전생에 그녀의 남편이었다 말하는 이는 신라시대의 귀족 도하로 악귀가 되어 떠돌다 준오의 몸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고, 영화는 가야 여성 한리타이자 그의 아내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둘의 악연을 풀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요. 그녀 곁에서 벌어지는 나쁜 상황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상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의심을 사다 결국에는 준오의 몸에서 빠져나와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영화 앞에 서게 된 도하는 여전히 냉철하면서도 안타까운 시선을 그녀에게 보내는데, 둘의 결말을 알고 다시 바라보니 애틋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도하의 목에 가득한 핏빛 상처를 제외한다면, 그에게로 향하는 영화의 두근거리는 시선은 신라시대 속 한리타와 많이 닮아 있었거든요.
웹툰을 읽는 내내 제목인 '낮에 뜨는 달'의 의미가 궁금했어요. 달은 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비춰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과 반대되는 개념을 사용해 호기심을 더했거든요. 그 순간 문득, 어느 오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봤을 때 달의 모양을 눈으로 확인했던 경험이 생각났습니다. 실제로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일 뿐, 낮에도 달이 떠 있는 것이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뜻에서 유추해 보자면 낮에 뜨는 달은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곁에 존재하는 사랑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함이 의혹으로 번져나가 독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잔혹한 사랑의 또다른 이름. 밝은 세상 속에 터져 나와 더 진한 어둠으로 물들일 수 있는 힘을 지닌 감정의 결정체.
혹은 문자 그대로, 진실에 개의치 않고 밤에 뜨는 달의 사전적 정의만을 받아들여 전생과 현생을 오고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의 완성을 나타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 순간이 위기로 가득했던 한리타에게 있어 사랑은 사치였을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하에게 빠져들었습니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했고, 증오하면서도 그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지요. 보이지 않는 사랑의 감정에 사로잡혀 서서히 스스로를 옭아매기만 했을 뿐......자신의 나라와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한 거래로부터 시작된 계약결혼은 낮에 뜨는 달처럼, 투명하면서도 때때로 또렷하게 다가와 그녀를 힘들게 했습니다.
도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으나 마음을 멈출 수 없었어요. 그의 사랑은 서서히 형체를 갖춰 나가며 낮에는 보이지 않았다 어둠과 더불어 침묵이 찾아오는 밤의 시간이 되어서야 조금씩 색채를 드러냈습니다. 가야인을 멸시하던 신라인들에게서 아내를 지켜내고자 했던 그의 선택은 이로 인해 더 치명적이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도하와 한리타, 영화와 도하. 세 사람의 얽히고 설킨 과거와 현재는 당연히 사랑이 중심을 이루지만, 역사의 한 켠 또한 파헤치며 이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독자들을 이끌었습니다. 요즘 역사 로맨스가 워낙 흔해진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생생함이 활기를 띄어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답니다.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작가는 풀어낸 마지막은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어요. 때때로 과거의 한리타와 마주하며 선택을 강요받았지만 영화는 자신이 살아갈 인생을 위해 올바른 길을 찾았다고 봅니다.
놀랍게도 웹툰 '낮에 뜨는 달' 역시 드라마화가 결정되었다고 해요. 요즘 인기있다 싶은 작품 대부분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시청자들을 찾아오는 것이 익숙해졌는데, 그렇다고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 마음이 좀 복잡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그저, 장르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입체적인 표현과 스토리 구성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랄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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