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드라마 시간이 공개된 이후, 정해진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데는 성공했지만 마지막까지도 작품의 행보가 순탄치만은 않을 예정입니다. 언젠가 다가올 죽음 앞에서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으나 주인공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고, 1회부터 4회까지 보여진 상황 속에서 안하무인 재벌남과 무일푼 캔디녀의 악연이 인연으로 변화하게 될 순간을 예감하게 만들며 일단은 어두운 리미티드 미스터리 로맨스의 포문을 열었는데 의외의 사건들이 현실에서도 터져 나왔기에 제작진과 출연진은 물론이거니와 시청자들까지 이로 인한 당황스러움을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백화점 주차 안내요원으로 일하던 설지현(서현)은 VIP고객을 못 알아봤단 이유로 천수호(김정현)의 갑질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지현의 동생 지은(윤지원)은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되는데 그녀와 함께 있던 주인공이 천수호로 밝혀지면서 사건은 조작과 은폐의 수순을 밟게 됩니다. 그것도, 지현이 사랑하는 연인 신민석(김준한)으로 인해. 그리고 사건 당일, 천수호의 연락을 받고 현장을 찾았던 약혼녀 은채아(황승언)의 방문 흔적마저 민석으로 인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말아요.
4회까지 지켜보면서 이제 겨우 출발선을 넘었을 뿐인데, 클리셰 범벅으로도 모자라 자극적인 설정과 여성 캐릭터의 끊임없는 소모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극명한 이분법적 사고로 남녀 주인공을 금수저와 흙수저로 구분해 명명한 기획의도 역시도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없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만큼은 뚜렷하게 와닿아 이 순간 만큼은 유독 인상깊게 남았습니다.
그건 바로 민석이 품에 소중히 갖고 다니던 펜에 적힌 한 문장이 아닐까 싶었어요.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그러나 이러한 정의를 보여주기 위해 희생되어야 할 가치가 너무나도 많아서 그것을 향해 나아갈 길을 맞닥뜨리는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긴 했답니다.
그리고 예상 외로, 드라마 시간에서 가장 눈에 띈 인물은 신민석 역을 맡은 배우 김준한이었어요. 천수호의 아버지 천만희가 이끄는 W그룹 법무팀 변호사로 수호가 중심이 된 살인사건을 맡게 됨으로써 욕망에 서서히 눈뜨는 인물을 그려내는 감정선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거든요. 동생은 죽고, 돈 때문에 자취를 감춘 엄마로 인해 혼자 남게 된 지현에게 민석은 의지할 수 있는 남자친구가 아니라 사건을 축소시키기 위해 애쓰는 설계자로의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비춰짐에 따라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백지수표에 100억이라는 숫자를 당당히 적어 천만희에게 건네던 자신만만함이 주인공들을 향한 파장으로 확대될 것을 직감하게 해줘 이로 인한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건을 지배하는 인물이자 욕망의 한계를 뛰어넘을 캐릭터로의 신민석이 작품의 키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짐작하게 되었다지요.
다만, 제작발표회를 통해 주인공 천수호를 맡은 김정현의 태도 논란이 불거진 건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그런 이유로 방영 전엔 이 문제를 끊임없이 기사로 내보내며 이슈화가 되게 만들어 놓고선, 첫방송과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끊임없는 호평으로 긍정적인 내용의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 자체에 놀라움이 가시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결국, 빠른 태세 전환을 마주하게 한 노이즈 마케팅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 뿐이었으니까요.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태도논란은 사라질 수 없어요. 이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드라마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천수호로 분한 김정현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으나 제작발표회에서 과몰입할 만큼은 또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현실의 김정현과 드라마의 천수호를 구분짓지 못한다면 이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전작을 통해 시선을 사로잡았던 배우였던 만큼 씁쓸함 또한 크게 와닿았습니다.
여기에 더해져 김정현은 최근에 건강을 이유로 중도하차를 결정하게 되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심적인 부담감도 컸겠지만 신체적으로도 이상 증세가 나타나게 됐고, 그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활동에 박차를 가하던 상태였기에 본인 스스로도 아쉬울 테지만 그래도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 잘 추스르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지현에겐 이제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믿었던 남자친구가 돌아서 버린 상황에서 시한부를 선고받은 천수호만이 그녀의 곁을 맴돌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말할 뿐이었어요. 이로 인해 비 내리는 도로 위에 주저앉은 지현을 품에 안고 위험한 거리를 건너는 장면이 4회 엔딩을 장식했는데, 이것마저도 뻔한 장면다운 결말이었어서 딱히 공감이 가는 건 아니었어요.
급기야 계속되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천수호가 자신의 일을 끝까지 마치지 못할 지경에 다다랐으니, 결론적으로는 드라마 시간에서 지현의 책임이 막중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돌이 아닌 연기자로, 여주인공으로 자리잡게 된 서현의 건투를 빌어 봅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시간의 임팩트는 처음 4회 동안이 가장 강렬했다고 생각됩니다. 그 안에서 두드러진 명장면은 바로 이 부분이었고요. 지현이 민석에게 주었던 선물에 적힌 글귀. "정의가 결국 승리한다"에서 "정의가"라는 세 글자가 사라지고 나면 남는 건 "결국 승리한다"였다는 점. 민석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 남은 시간을 보낼 테지만, 어쩌면 그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게임을 펼치게 될 거라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죄값을 치뤄야 되는 건 총을 쏜 사람입니까? 전쟁을 일으킨 사람입니까?"
채아를 향해 던진 민석의 질문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는 거겠죠. 답은 아마 둘 다일 테고 말이에요. 총을 쏜 사람도, 전쟁을 일으킨 사람도 결국에는 죄값을 치르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안타깝지만, 드라마 시간 속 그 어디에서도 정의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모두를 위한 정의가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정의를 실현하기 바쁜 사람들의 정해진 시간은 결국 본인을 가두는 감옥이 될고 말 것이라는 예감만 들었을 뿐이에요.
드라마 시간은 확실히 수호와 지현의 리미티드 로맨스가 아니라 심오한 미스터리를 더 깊이 조장하게 될 민석에게 초점을 맞춰 지켜보게 되는 작품이었어요. 제 기준에서는요. 이와 더불어 예상치 못했던 천수호의 사라짐이 드라마의 남은 회차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도 계속해서 확인을 해봐야겠지요.
배우들의 열연이 중심을 잡고 있다고는 하나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수호와 지현의 위장결혼으로 전개되는 설정은 여전히 뻔함을 벗어나지 못해 마지막회까지 시청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고민되지 않을 수가 없는 요즘입니다. 기대했던 작품이었는데 생각보다 잡음이 많아서 여러모로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남은 회차가 얼마 되진 않지만 시청자들의 시간 역시 무한한 것은 아니니 부디, 뻔하지 않은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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