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을 통해 발간된 [결혼없이 함께 산다는 것]은 01(남자), 91(여자), 두 사람이 써내려간 사랑과 생활의 기록을 마주하는 것이 가능한 책이었습니다. 같이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지만 데이트 비용이 경제적인 문제로 떠오름에 따라 함께 살기로 마음먹은 두 사람은 동거를 결정했고, 이로 인해 맞닥뜨리게 된 새로운 일상을 번갈아가며 솔직하게 풀어낸 것이 에세이의 특징이었어요.
이러한 이유로, 결혼없이 함께 살기에 앞서 일주일 동안 에어비앤비를 빌려서 살며 미리 시뮬레이션까지 해봤다는 점에서 치밀한 계획성이 드러나 눈여겨 볼만 했습니다. 앞으로의 삶은 현실이므로 각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이 필수라는 점에서 둘의 꼼꼼한 면모를 확인하게 돼 흥미로웠음은 물론입니다.
한지붕 아래에서 언제든 함께 할 수 있게 된 연인들은 여전히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절약하는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걸 두 사람의 글 속에서 확인하게 돼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책 속에 포함된 인터뷰에 따르자면 01과 달리 91의 경우에는 연인과 같이 사는 걸 아직 부모님께 말씀 드리지 못했다고 밝혀서 안타까움을 자아냈어요. [결혼없이 함께 산다는 것]을 닉네임으로 출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01과 91이 함께 살면서 해야 할 집안일을 나누어 책임짐과 동시에 연인들만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는 모습에서 동거로 인한 연애의 장점을 만나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어요. 이와 함께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이 변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동거라는 단어가 불러 일으키는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기에 조심스러운 두 사람의 마음도 이해가 충분히 갔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에 비하여 상황이 조금 나아져서 동거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진 걸로 알아요. 실제로 같이 살다가 결혼에 골인한 커플도 적지 않고 말이죠. 그치만 아직까지는 동거 자체에 대한 시선이 마냥 곱다고 볼 수 없는데, 이 책이 부정적인 생각을 덜어주는 계기로 자리매김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있다고 해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도 각기 다른 이유로 결혼을 원치 않으나 동거를 하려는 이들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결혼을 안 해도 법적으로 보호받는 일이 가능한 장치가 존재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게 될 테니까요. 남녀 커플 외에 동성 커플, 미혼모, 1인 가구가 증가하는 현시점에서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생활동반자법이 다시금 화두로 떠오르게 된 건, 우연이 아닐 거예요.
01과 91이 함께 보낸 시간을 한 권의 책으로 기념하고자 탄생시킨 [결혼없이 함께 산다는 것]은, 동거 커플의 소소한 일상을 토대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가 녹아든 에세이라 뜻깊은 한때를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최근 들어서 독립출판을 통해 재밌는 책을 여럿 만나볼 수 있게 돼 즐겁네요.
일기처럼 끄적인 아기자기한 글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인식과 제도 개선을 향한 바람까지 담아냄으로써 적당히 가볍고 빠르게 읽어보기에 괜찮았어요. 은근히 마음에 남는 얘기도 있었고요. 그리고 책표지와 중간중간에 삽입된 그림도 귀여웠답니다. 앞으로도 01, 91 커플의 결혼없이 함께 사는 삶이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며, 오늘의 책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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