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에서 출간된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강화길의 '음복',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김봉곤의 '그런 생활', 이현석의 '다른 세계에서도', 김초엽의 '인지 공간', 장류진의 '연수', 장희원의 '우리의 환대'로 구성됨에 따라 7명의 작가가 선보이는 일곱 가지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로움 가득한 책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도서명에 걸맞는, 젊은 작가들의 남다른 필력을 확인하는 게 가능해 즐거웠어요. 그중에서도 제 마음에 쏙 들었던 베스트 3는 강화길, 최은영, 장류진 작가의 작품이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강화길의 '음복'은 제11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으로 책을 펼치자마자 제일 먼저 읽어볼 수 있었는데, 극도의 몰입감 속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소설에 깊이 빠져들도록 만들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이와 함께, 소설 뒤에 곧바로 이어지던 평론가 오은교의 글에서 이 작품을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로 명명하며 풀어나간 문장들마저도 공감대를 자아내며 집중하게 도와 깜짝 놀랐답니다.
결혼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고자 시댁에 방문한 세나가 남편 정우의 가족 사이에 드리워진 팽팽한 긴장감을 포착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집안에서 빚어지고 있는 갈등과 관련된 오랜 역사와 이를 뒤따르는 숨겨진 비밀이 수면 아래에 가라앉은 채 조용히 요동치는 상황을 알아차리며 마주하게 된 비극을 풀어낸 작품이었어요.
남편의 할아버지가 좋아했다는 이유로 정체가 다소 모호한 토마토 소고기 찜이 매번 제사상에 오르는 집안에서 오직 정우만이 그 요리를 맛있게 먹어치운다는 사실이 확인하게 해준 가부장제의 실상과 아들의 특권은, 오히려 악역을 맡게 된 고모의 역할을 이해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로 남았답니다.
단 한 번의 제사를 통해 남편만이 자신이 태어나 자란 가정의 뒤틀린 속내를 모른 채 순진무구하게 살아왔음을 깨닫게 되지만 이날의 제사가 앞서 언급한 대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기 위해선 시어머니의 부탁대로, 정우는 여전히 아무것도 몰라야 할 것이기에 세나는 입을 닫기로 결심합니다.
가부장제로 인해 시아버지와 정우에게 주어진 권력을 그저 뒷편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시할머니, 시어머니, 고모의 삶을 이들의 제사에 첫발을 들인 세나가 유일하게 인지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스릴러적 양상을 띄는 스토리 전개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강화길의 '음복'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음복'을 다 읽고 나니, 소설의 처음을 장식한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라는 문장의 의미가 제대로 와닿아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된 시간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제삿날 풍경이 전해준 가족주의 여성 스릴러의 잔혹함이 남긴 여운이 놀라움을 자아냈던 이야기였어요.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비정규직 은행원 생활을 그만둔 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자 대학교 3학년 학사 편입생이 된 스물일곱 희원이 시간 강사에게 영어로 에세이를 작성하기 위한 수업을 들으면서 시작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수업 도중에 하필이면 생리가 새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 희원이 강사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여성들만의 돈독한 연대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진심을 터놓고 가까워졌던 두 사람은 에세이 발표 수업을 통해 멀어지며 예전과 같은 우정을 나눌 수 없는 상태를 맞닥뜨리게 돼요. 하지만 희원은 본인이 계획했던 대로 대학원에 진학해 논문을 쓰고 강사로 일하며 자신이 수업을 들었던 강사와 비슷한 길로 나아가면서 가끔씩 그녀를 생각하곤 합니다.
영어 에세이 수업이 마음에 들었던 희원에게 강사는 제목처럼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인물이었어요. 비록 미세한 빛줄기를 뿜어낼 정도에 그쳤지만, 인생을 바꿀 전환점이 되어준 것도 아니었지만, 수업을 들었던 시간과 강사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찰나만으로도 힘이 되어주기에는 충분했다고 보여집니다.
이 작품은 말로 설명하기보단 직접 읽어나가며 최은영의 섬세한 필력으로 이야기를 확인하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니,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실제로 만나보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독자의 감상만으로만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작품이었습니다.
장류진의 '연수'는 스물 다섯의 나이로 CPA(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9년째 회계사 일을 해오던 주연이 수입차를 구입한 후, 맘카페에서 50대 여성 운전강사를 소개 받아 연수를 받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소설이었어요.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운전을 못한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주연에게는 딸의 비혼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가 존재했기에 이로 인한 갈등도 이야기 속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운전 연수를 받는 동안 확인할 수 있었던 주연과 강사의 시간은, 앞선 시대를 살아간 인생 선배의 지혜를 확인하게 하며 잔잔한 흐름 가운데서 스릴 넘치는 한때를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강사가 보유한 철저한 기준에 입각해 진행된 다섯 시간의 연수는 주연에게 과거의 트라우마를 떨쳐내고 운전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만들어주기 충분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추가 수업을 받겠다고 말을 꺼낸 주연에게 운전은 혼자 해야 하는 거라며 거절한 강사의 굳은 심지가 돋보였고, 앞선 시대를 살아간 인생 선배와 다름없는 여성의 위풍당당함을 경험하게 해줘 눈여겨 볼만 했습니다. 회사에 여자가 많냐고 묻던 강사에게 그렇다고, 50대도 있냐는 질문에 많다고, 사실이 아닌 거짓의 대답으로 일관하던 주연의 모습에서 앞으로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는 간절함과 훗날의 자신을 상상한 듯한 뉘앙스가 풍겨서 이 또한 의미심장하게 읽혔습니다. 그리고 주연의 주변에 없을 뿐이지 실제로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면허시험에 합격한 이후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 없는 저에게 장류진의 '연수'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해 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좋은 강사님 만나서 연수 제대로 받고, 자신만만하게 운전할 날을 계획해 봐야겠어요^^
강화길, 최은영, 장류진의 소설에 주목하게 했던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특히 개성 넘치는 여성 서사의 다채로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줘서 만족스러웠던 책이었습니다. 이로 인한 공감대 형성도 상당했고 말이지요. 뿐만 아니라 앞으로를 이끌어 갈 젊은 작가들의 매력 넘치는 문체에 반했기에 신작 소설도 기대해 보려고 합니다.
덧붙여, 소설 한 편과 이에 더해진 평론을 통하여 해석의 여지가 풍부해지고 시야가 확장됨을 느낄 수 있어 뜻깊은 책이기도 했습니다. 여태껏 꼬박꼬박 수상작품집을 챙겨 읽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 책을 만나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그러니 지금부턴 수상작품집이 나올 때마다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읽을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책을 읽어가며 경험하는 기쁨과 마음에 드는 작가가 늘어나는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해서 언제나 환영이에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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