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책의 페이지를 한장 한장 넘기며 흥미롭게 읽어 내려갔던 소설 '파이 이야기'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로 새롭게 재탄생했음을 확인하고, 극장에 찾아가 원작소설을 재구성한 작품에 푹 빠졌던 날이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인상깊에 읽었던 건 사실이나 워낙 오래 전에 봤던 거라, 파이가 바다에 표류하면서 벌어졌던 사건이라는 것 이외에는 기억이 안 나는 상태로 영화관을 방문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조금씩 생각이 나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 가족이 동물들과 함께 배에 몸을 싣고 이민을 떠나던 와중에 거센 폭풍우가 덮쳐옴으로써 맞닥뜨려야만 했던 안타까운 사건을 다룬 이야기예요. 이로써 사람으로는 유일한 생존자가 된 파이가 구명보트에 올라타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과 표류하다 결국에는 보트 아래 몸을 숨긴 채 살아남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둘만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게 됨에 따라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중심이 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살기 위해 바다를 모험해야만 하는 여정에 놓인 파이의 인생은 힘겨움 그 자체였지만,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주는 영화로 인해 새로운 세계를 확인할 수 있어 눈을 뗄 수 없었답니다.
파이의 모험이 놀라웠던 이유로 호랑이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냈으면서도 잡아 먹히지 않고 공생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그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알게 돼 긴장감을 놓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이와 함께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휘하게 되는 인간의 대처능력이란, 생존 본능을 뛰어넘는 초인적인 힘에 가까웠기에 대단함이 느껴져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가 원작소설보다 뛰어났다고 생각된 것은 바로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에서 물고기들이 춤을 추며 바다 속을 환하게 비춰주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고 생각해요.
영화든 현실에서든, 잠시나마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아무리 극한 상황일지라고 해도 말이죠.
다른 건 몰라도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목숨을 잃지 않고 바다를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건,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만은 확실해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기 위해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결과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파이도 바다에 몸을 실은 채 그렇게 끄적거렸었죠.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기억해내지 못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책 속 파이 이야기의 반전 결말은, 영화 속에서 다시 한 번 파이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게 됩니다. 바다를 무사히 빠져나온 파이는 힘든 시간을 견디며 그렇게 어른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줍니다.
파이가 직접 경험한 모험담은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결국 힘든 순간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소년이 파이인 것만은 분명하기에 오히려 얘기를 들은 이들이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놓여 혼란스러움을 마주하게 되고 말아요. 왜냐하면, 파이가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든요.
과정이 어찌 됐든, 파이에게 벌어진 비극은 되돌릴 수 없는 진실이니까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싶네요. 항상, 모든 것이 그래왔듯이. 사람들은 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걸 믿는다고들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진실이 입을 다무는 순간, 우리가 믿는 것이 진실이 된다는 말을 실감하게 해줬던 영화가 바로 [라이프 오브 파이]였습니다. 결말까지 보고 나니 예상치 못했던 무게감이 전해져 와서, 동명의 원작소설을 다시 읽고 싶어질 정도였어요.
저도 그래서 제가 믿고 싶은대로 한번 믿어 보려고요. 어떤 이야기를 믿을 것인지, 그것은 오로지 우리의 몫으로 남겨둔 파이를 생각해서라도 말이죠. 힘겨웠던 시간을 뛰어넘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파이를 위하여, 저는 그의 판타지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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