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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캔 스피크] : 강렬한 메시지를 자극적으로 풀어내지 않아 더 와닿았던 이야기

베짱꼬북 2018. 9. 24. 00:42


올해도 어김없이 명절 연휴를 맞이해서 TV를 통해 다양한 추석특선영화를 만날 수 있게 됐는데요, 그중에서도 바로 오늘! 2018년 9월 24일 월요일 오후 8시 45분에 SBS에서 시청하는 것이 가능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풀어볼까 합니다. 저는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는데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작품으로 마음 속에 여운이 남아 가끔씩 생각이 나더라고요.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전근 온 9급 공무원 민재와 잔뼈 굵은 동네 민원 제기인 옥분의 대립으로부터 시작됨으로써 그녀가 그에게 영어를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초반에 집중시키며 따뜻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미국에 거주 중인 남동생과의 소통을 위해 영어회화에 매진하던 옥분은 학원에서 수강료를 환불해 주면서까지 돌려보내는 아픔을 겪던 와중에 우연히, 민재의 영어 실력을 확인하면서 그에게 선생님이 되주기를 바라며 구청을 맴돌아요. 아직 서로를 잘 아는 상태는 아니지만 구청에서의 익숙한 대면을 이유로, 두 사람 모두 만만치 않은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기에 계속되는 신경전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답니다.

 


원칙주의자로 반듯한 겉모습과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며 첫날부터 일에 집중하던 민재는 끝도 없이 민원을 제기하는 옥분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고 자신만의 능력을 십분 발휘, 업무를 해결해 나갑니다. 구청장 앞에서도 똑소리 나는 발언으로 모두를 감탄에 빠져들게 만들 정도였으니 할말 다한 거 아닐까 싶네요. 55의 반듯한 가르마와 안경 또한 그의 필수품 또한 직업적 정신과 잘 어울리는 비주얼을 뽐냈고 말이죠.


 

하지만 사실, 그의 꿈은 공무원이 아니었어요. 건축가가 되고 싶었으나 예상치 못한 가정 상황으로 부모님 대신 하나 뿐인 남동생을 책임져야 했고, 생계를 위해 직업을 선택해야 해서 지금의 길을 가게 된 것 뿐이었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므로 사명감까지 존재한다고 말할 순 없겠으나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내기에 각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윈윈은 가능했지요.

 


민재와 옥분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지만 본격적인 소재가 등장하기 전까지 둘의 인연을 맺어주는 곳이 바로 구청이기에, 구청 직원들의 감초 같은 열연이 돋보이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민원 처리 외에도 특별한 날마다 치뤄지는 행사로 인해 다양한 역할을 분담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으니까요.

 

구민들 가까이에서 그들이 겪는 불편을 해소하고자 노력하는 구청 직원들. 하지만, 그들 못지 않게 기업과의 관계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시장을 가운데 두고 갈등을 겪는 순간 또한 피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한 편의 영화 속에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는 에피소드가 가득한데, 우리 주변과 맞닿은 얘기가 많아서 더 눈과 귀를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은근히 민재에게 관심을 표현하던 아영이 등장할 때마다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작품 자체에 로맨스가 파고들 틈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로 인하여 제대로 삽질하는 캐릭터로의 열연이 존재감을 더 빛나게 해주었거든요.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했던 민재를 향한 아영의 발언은, 약방의 감초처럼 영화에 활력소를 불어 넣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눈여겨 볼만 했어요.

 


오로지 영어를 향한 일념 하나만으로, 그동안 제기하던 민원 보따리를 버리고 민재가 바라다 보이는 의자에 똑바로 앉아 교재를 들여다 보며 압박을 가하던 옥분.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끝없이 노력하던 옥분의 열정은 충분히 존경심을 표할만 했고, 배울만한 가치 또한 있었습니다.

 

시장통을 누비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지만 오히려 그들은 옥분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달가워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그녀의 모습 역시도 눈부셔 보였어요.

 


옥분의 끝없는 구애와 구청 직원들의 간절한 부탁으로 민재는 결국 영어 선생님이 되어 그녀를 가르쳐 나가게 됩니다. 어려운 단어를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쉬운 단어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음을 기본으로 빠른 이해를 돕는 설명이 영화를 보는 제 귀에도 쏙쏙 들어올 정도로 좋았어요.


 

꿈이 있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했던가요? 그것은 당사자 본인에 한정된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재 역시 그것에 감명을 받으며 변화하기 시작했으니까 말이죠.

 



민재의 수업은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실전에 돌입하며 제대로 된 결실을 경험하게 도왔습니다. 외국인이 즐비한 술집에서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하나되어 신나게 노니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어요. 용기 있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으며 영어실력 또한 일취월장한다는 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살아있는 공부임을 알려주었던 한때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며 진심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옥분은 외로웠고, 민재 역시 마찬가지였거든요. 영어공부를 계기로 고독했던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나가던 둘이 친근한 관계로 정을 나누기 시작함을 느꼈을 때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의외로 둘 사이의 공통점 또한 만날 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어이없는 개그로 쿵짝이 잘 맞았던 것! 서면이 어디 있는지 아냐는 민재의 질문에 대한 답과 그것을 생강으로 받는 옥분의 센스는 허무하지만 웃지 않을 수 없는 유머 코드가 겸비된 장치로 관객들을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했답니다.


개그로만 치면, 둘의 나이는 같은 연령대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라면은 끓여먹는 것이여."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는 기억하고 싶은 명대사가 참 많은데, 민재의 동생 영재와 옥분의 기이한 첫 만남을 떠올리게 하는 한 마디가 특히나 인상깊었습니다. 제대로 된 집밥을 먹지 못했던 영재가 옥분과 함께 하며 정을 쌓고 민재 또한 합류해 가족 못지 않은 케미를 보여주는 장면이 포근했어요.


이제는 뭐 가족과도 다름없는 존재가 된 세 사람이에요. 극중에서 명절을 맞아 음식을 해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개봉일도 그랬고, TV에서 영화를 방영하는 날 또한 추석 연휴이기에 기나 긴 휴일 속에서 시간이 된다면 영화 [아이 캔 스피크]와 함께 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이 작품이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것을 알고 갔기에, 언제쯤 그 이야기가 터져 나올지 궁금했어요. 그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였는데, 유연하게 시선을 옮기며 집중할 수 있도록 절정의 순간에 압축해보여주는 점이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던 옥분의 과거가 밝혀짐과 동시에 그녀가 아픈 친구를 대신해 미국 의회에 참석, 네덜란드 국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함께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는 장면은 백미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2007년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상정되었던 장면을 재현한 것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작품의 진가가 발휘되며 눈시울을 붉히고 분노를 가중시키게 했던 장면이었어요.


여전히 사죄하지 않고 버티는 일본을 향한 일침과 그녀가 살아 온 쓸쓸한 생의 이면은 눈물과 콧물을 쏙 빼며 절대로 이 사건을 잊지 않겠다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영화가 좋았던 것은, 계속해서 화두에 오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관련 문제를 자극적이지 않게 풀어냈다는 점이에요. 이로 인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마음을 파고들었답니다.


"이렇게 만들 수도 있는 거였잖아!"라는 깨달음을 맞닥뜨리게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의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세련된 이야기의 서사에 배우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열연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보는 내내 마음을 울렸다지요. 그런 의미에서 감독님도 멋졌지만 이런 글을 써주신 작가님을 리스펙트!



배우 나문희의 멋진 연기는 감동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녀로 인해 영화가 완성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좋은 작품과 명연기로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이와 함께 배우 이제훈 역시도 칭찬합니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 온 길이 새삼 다르게 보여졌어요. 흥행은 제쳐두고 작품 선별력에 있어 탁월한 선견지명이 엿보여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이날 오랜만에 굉장히 좋은 영화를 봤다고 생각했어요. 관람 전부터 입소문이 나서 궁금했던 작품인데 직접 보고 나니 왜 그런지 이유를 알 것 같더라고요. 영화관에서는 이미 막을 내렸지만 TV 방영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하루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역사를 바로 알고, 잘못을 바로잡으며 용서를 받아내기 위한 길이 더 넓게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아직도 여전히 사죄하지 않는 그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가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그리하여 우리가 원한 것을 성취하는 날이 오기를. 미래의 어느 날 그 순간이 찾아오기를 소망하며 과거가 되어버릴 이 기록을 남기는 바입니다. 


제목에 담긴 모든 희망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면서요!